2023. 5. 28. 15:00ㆍ문화에서 마음 잡기/책에서 잡기!
-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 '시샘'
글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시샘이었다. 부러움에 근간이 있는 시샘.
책 속에서 하는 대화,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 심지어는 러시아에 갔다는 사실과 거기서 일어난 일을 표현하는 방법 모두가 시샘의 대상이었다. 그러면서 책을 끝까지 읽었다. 시샘하면서 읽었다.
책에는 내가 스페인을 갔을 때 원했던 모습들이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과 웃으면서 대화하기,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기 같은. 정확히는 그 모습을 통해 감정적인 큰 울림을 마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웃으며 대화한 적도 있고 나름 가보지 않은 세상에 가 봤지만, 대부분의 순간에 대화가 두려워 사람을 피했고 넓은 세상을 보기보다 그냥 걷다가만 왔다.
이렇게 내가 여행을 하면서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것들이 책 속에서 보였다. 작가는 함께 기차를 탄 사람과 대화를 했고 역경 속에서 좋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넓은 세상을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출발한 작가가 실업급여를 위해 난관을 뚫고 한국에 돌아온 사실, 심지어는 이렇게 책까지 낸 사실, 여행 전 찢은 복학 신청서를 다시 작성해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개인 내면에서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확실히 보여준다.
- "너도 나와 같은 줄 알았는데..."
일전에 작가의 글을 읽어오면서 작가와 나를 동일시했던 적이 있었다. 동일시했던 적? 정확히는 '대충 동일시했다.'라는 표현이 더 괜찮은 거 같다. 그래서 뭘 동일시했냐고 물어보면 구체적으로 답 하지는 못하고 상상 속의 작가가 내 모습과 비슷하다고 대충 느꼈던 것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동안의 시간이 무너진 것이다! '이 사람이 이렇게나 외국어에 능통했다니.', '이렇게 인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니.' 따위의 생각을 하니 사실은 멀찍이 떨어진, 저 위에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는 그 거리를 다름이라고 부르고 책을 읽던 나는 기만이라고 불렀다.
이미 책 속에서 작가가 겪고 있는 한국에서의 힘듦, 공항에서의 사건, 코로나 확진, 전쟁 발발, 귀국 비행기 결항, 실업급여 따위는 어떤 공감의 대상도 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 살면서 러시아까지 갈 수 있는 비용이 있다는 점, 비행기를 갈아탈 수 있는 비용이 있다는 점, 코로나에 걸려도 좋은 사람들이 챙겨준다는 점, 외국인이랑 쉽게 말이 통한다는 점, 난 몰랐던 실업급여를 알아서 잘 챙겨 받는다는 점, 그 외 다수. 그런 것들만 보인 것이다.
- "근데, 알아. 내 탓이지."
하지만 알고 있었다. 작가가 자신의 못남을 전면에 내세운 채 그 뒤에 숨어 은근히 자신을 드려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감정의 원인은 작가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작가와 나를 동일시하고 있던 그 모습이, 그로 인해 받아들이지 못하는 둘 사이의 괴리가 만들어낸 이 부정적인 감정이 잘못된 방향의 접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결국 내가 작가의 여로를 책으로 동행하면서 느낀 것은 시샘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시샘으로 하게 된 자아성찰. 내 옆에 걷고 있는 이 사람을 보는 나를 보면서 본 내 모습에 대한 것들이다.
그래서 책 <여로>를 읽으며 본 내 모습을 뜯어보기로 했다. 드디어 내 모습을 보기로 했다.
-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통해 느낀 시샘의 기저에는 단순 기술적인 능력, 행운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시샘을 하면서 동시에 내가 했던 행동을 돌아보게 되는데, 그 기억 속에 나는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살갑게 대화하고 싶었더라면 먼저 말을 꺼내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상대가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지, 괜히 말 꺼냈다가 부정적인 리액션을 받지 않을지, 보고 싶지 않은 표정을 보게 되지 않을지, 수 없이 고민하고 두려워했다. 결국 내가 부러워했던 것들을 내가 얻지 못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행동하지 않음'에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진정 부끄러워했던 것은 기술의 부재가 아닌 소심함이었다.
물론 자신감이 기술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이 얼마나 충분한지, 정도를 모르는 사람한테는 시도 없이 기술만 키우게 만든다. 그리고 증명받지 못해 기술을 키우는 것마저 포기하게 만든다. 결국 내가 원하는 모습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데 시간을 쓰면서 나는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돼,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감이 기술에서 나오는 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 둘이 꼭 일방향적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되려 자신감으로 기술을 키울 수도 있는 것이니까.
결국 나한테 필요한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단연 여행에서 내가 바랐던 것들뿐만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나는 글을 썼을 때, 영상을 만들었을 때, 사진을 찍었을 때 듣는 부정적 피드백이 두려워 시도하지 않았던 기간이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못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렇게 잃어버린 아이디어 속에 얼마나 빛나는 것들이 있었을지 생각하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실제로 부족한 부분이 차고 넘치겠지만 위에서 말했듯 기술을 다 키워 놓은 상태로 매번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술과 자신감. 그 두 개가 함께해야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 마무리
내가 <여로>에서 작가를 부러워하고 시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그가 움직였다는 것에 있다. 내가 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움직여야 한다. 그 안에서 나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독자에게 원했던 것은 이런 게 아닐 것이다. '내 잘남으로 너의 부족함을 깨닫고 성찰해라!'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작가의 의도만큼이나 독자의 성찰도 중요하다는 뻔한 생각으로 대충 무마시킨다. 덕분에 그간 내 시샘의 감정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었고 내가 스스로 원하는 사람의 모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게 됐으니 좋은 거 아닐까?
뭐.. 아무튼..
감사하다! 이묵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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