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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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네, 나의 역사 : 03. 집 앞 골목길
집 앞에는 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골목길이 있다. 주차장 옆 좁은 골목길, 교회 뒤편으로 나가는 골목길, 차가 드나드는 경사진 골목길. 이 세 개의 골목길은 각기 다른 모양새와 쓰임 덕에 각기 다른 기억으로 남아있다. 좁은 골목길 주차장의 옆으로 돌아가면 거리로 나갈 수 있는 아주 좁은 골목길이 있다. 이 곳은 좁은 만큼 아늑한 느낌을 준다. 거리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두 명은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덕에 거리에서 오는 소음이 많이 가려진다. 그래서 해가 따뜻하게 들어오는 때나 어두워진 밤에 이 골목에 들어서면 괜히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시선에 들어오는 골목길의 풍경도 한 몫하는데, 맑은 낮에는 따뜻한 햇볕과 화단, 붉은색의 단독주택이. 비 오는 날 바닥, 담벼락, 실외기에..
2023.08.02 -
나의 동네, 나의 역사 : 02. 옥상, 가로등, 주차장
내가 사는 곳은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큰 변화가 없어서 달라진 점을 찾아보려면 자세히 뜯어봐야 한다. 빨, 초, 검의 옥상처마, 까슬까슬한 외벽, 살짝만 밀면 부러질 듯한 베란다 난간들, 나와있는 실외기들 까지. 내가 이사 온 2002년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한 것 없이 대부분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척이나 미미한 그러데이션으로 가끔 '저기가 저렇게 돼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옥상 어릴 적 옥상은 이불 빨래 건조장, 금단의 장소. 두 가지 키워드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어머니께서 이불빨래를 하실 때면 꼭 옥상에 있는 빨랫줄에 널고는 하셨다. 그래서 이불빨래를 하시는 날에는 어머니를 쫓아 올라가 이불을 하나하나 품에 안은 채 옆에서 기다렸다. 여러 장의 이불을 하나하나 가져가기 편하..
2023.07.26 -
나의 동네, 나의 역사 : 01. 현대종합상가
현대종합상가 나는 유치원 때부터 살았던 빌라에서 20년째 살고 있지만 현대아파트 앞 상가의 혜택은 아파트 주민만큼이나 톡톡히 이용했다. 건물 안에는 빵집, 자전거 수리점, 편의점, 떡볶이집, 은행, 병원, 학원 등 필요한 것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아과 어릴 적 몸이 아프면 건물 안에 있는 소아과에 가곤 했다. 지금이랑 다르게 그땐 잔병치레를 꽤 했어서 자주 갔던 편이었다. 기억으로는 소아과가 무서운 기억은 아니었다. 기억 속 소아과는 불을 켜두지 않은 덕에 한 쪽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적당한 대비를 만든 아늑한 공간이었다. 선생님도 간호사분도 모두 친절하셨고 워낙 자주 갔기에 얼굴을 기억해 주시고 아프지 말라며 항상 인사를 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 병원을 왜 그렇게 좋아했나 생각해 ..
2023.07.19 -
나의 동네, 나의 역사 : 00. 프롤로그
우리 동네는 구역이 나눠져 있었다. 저 쪽은 아파트 단지들, 이 쪽은 빌라촌. 그 덕에 초등학교 때 '아래 동네는 못 사는 애들'이라는 소리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랬던 빌라촌에 10층이 넘어가는 오피스텔이 올라가고 있다. 유현준 교수의 책 에서 아이들은 공간을 장소로 만든다고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동네의 곳곳을 누비며 탐험을 했던 적이 언제일까. 내가 우리 동네를 장소로 생각하고 만들었던 마지막은 언제일까. 까마득한 옛날의 기억을 뒤로하고 지금은 익숙하다는 느낌으로 20년 넘게 산 이 동네를 흘려보내 듯 지나치며 살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카페 '미드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동네에선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디자인의 카페. 원래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비로소..
2023.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