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서 나오는 말들/with_story_rai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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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옛날 동요에 보면 까치 설날 있잖아." "갑자기?" 테이블도 의자도 너무 낮아 낑낑 거리며 겨우 컵을 집고 나서 대답했다. 둘 다 할 말이 없어 마주 앉아 핸드폰만 하던터라 이런 주제로까지 얘기하는구나 싶었다. "응. 그거 왜 까치 설날이라고 부르는지 알아?" "글쎄... 아마 까치가 뭐 행운이나 복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던 거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그럴듯한 말로 대답했다. 까치면 또 그럴만도 하니까. 뭐 제비 이런 애들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적어도 까마귀랑은 정반대의 느낌이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원래는 작다는 의미의 아치에서 시작했대. 그러니까 까치설은 아치설이고 작은 설이라는 뜻인거지." "아..." 관심이 없으니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도 모르겠어 적당히 대꾸했다. 다시 낑낑대며..
2024.02.10 -
<7호선 여행기>, 2023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한다. 나는 무려 굴포천역에서 출발했단 말이다. 시간으로만 치면 한 시간이 족히 되는 거리다. 한 시간은 무슨, 집부터 시작하면 한 시간 반은 훌쩍 넘는 시간이다. 굴포천에서 타도 어차피 없을 자리지만, 그래도 나름 빨리 앉아보겠다고 나름 금방 내릴 것 같은 사람 앞에 섰다. 막 차려입지 않은 데다 편해 보이는 복장, 검정 백팩까지. 최소 가산디지털단지, 좀 더 쳐줘도 대림역에서는 앉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가산디지털단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여기서 내리지는 않는가보다. 다음 역에서 내리시려면 슬슬 일어나셔야 할 텐데.. 남구로. 여느 때처럼 1/3 이상의 사람들이 내렸다. 그 중 몇 명은 내 앞 좌석 줄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있었다. 내 앞사람의 머리는 더 바닥으로 기울었다. ..
2023.12.20 -
<몸균형상실경고>, 2023
항상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다. 뭔가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쉽사리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누군가가 친절히 안내까지 해줌에도 불구하고. '몸균형상실경고' 의아스럽고도 조금은 실소가 나오는 말이다. 보통은 '미끄럼주의' 라던지 '추락주의' 같은 말을 쓰지 않나? 내 몸의 균형이 상실... 그러니까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조심하라는 말은 그리 직관적인 말은 아닌 듯하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나도 무게중심을 제대로 못 잡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니 정확한 표현이긴 한 듯 싶다. 심지어 뒤에 붙은 '경고'는 비슷해 보이는 '주의'보다 한 단계 더 강력한 말이다. '몸균형상실주의'나 '몸균형상실경고'는 언뜻 그 의미가 통해 보이지만 경고 쪽이 좀 더 조심을 요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 생경한 경고..
2023.10.01 -
<역참>, 2023
오늘은 집 근처 도서관에 왔다. 집 근처? 근처라고 할 수는 없지. 집과 회사,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곳이니. 그 회사도 진작에 전 직장이 됐다. 아직 집에는 사실대로 알리지 못했다. 덕분에 매일 깔끔히 옷을 차려입고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장을 입는 회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이 더운 여름에도 어느정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올 수 있었다. 오늘은 하늘색 긴 셔츠에 짙은 파란색 반바지, 주황색 가죽 백팩을 매고 나왔다. 아, 시계도 잊지 않고 차고 나왔다. 내가 잘 볼, 보여줄 사회도 없지만 그럼에도 보여지는 것은 중요하다. 내 하루 일과는 별 다를 것이 없다. 몇 십년을 오가던 출근길을 무의식적으로 가다가 아차 싶을 때 멈춰선다. 그리고 집 방향으로 정처 없이 걸어간다... 정처 없이 걸..
2023.09.26 -
필터
"아무리 봐도 그런 의미가 아닌 거 같은데?" 오른편에 앉아있던 사람이 말했다. "그냥 인물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 아니야?" 왼편에서 듣고 있던 사람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지 찝찝한 표정으로 듣다가 대답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높은 위치인 사람의 상징으로 쓰이는 건 문제가 좀 있지 않나? 안 그래도 심각한 문제인데 차별을 더 고착화할 뿐이라고." "이건 그냥 상징일 뿌...." "꼭 그렇게 표현 해야했을까." 왼편의 사람이 오른편 사람의 말을 썩뚝 끊으며 짜증이 난 말투를 숨기지 못한 채 대답했다. 오른편의 사람도 속이 끓는다는 표정을 숨기려 노력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표정을 하고있다. 왼편의 사람이 이어서 말 했다. "저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동등하고 차별받지 않은 권리가 있어. 굳이 저렇..
2023.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