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서 마음 잡기(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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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헤쳐모여 7(The Hechyeomoyeo 7)>
전시를 했다. 뭐 개인전같이 엄청난 것을 한 건 아니고, 그룹전에 한 작품 올렸다. 물론 이것도 꽤 멋있는 일이긴 하다. 이번 전시에 올린 작품은 작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갔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순례길 2일 차.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 데 레이로 가는 길이었다. 순례길을 걸은 지 얼마 안 돼 다음 마을까지 얼마나 걸릴지 확신이 없었기에, 동트기 전부터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마을을 벗어나 산 길에 접어들 때 즈음 저 멀리서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주변은 금세 환해졌다. 그럼에도 이른 출발, 비수기 탓에 길을 걷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시골을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새벽 산은 안개가 자욱하다. 자욱한 안개로 인한 짧은 시야, 보이지 않는 사람, 내 걸음과 가방과 옷이 마찰되는 소리만 있는, 이 오르..
2024.09.30 -
<은의 혀>, 박지선과 윤혜숙 그리고 배우 및 스탭들.
본 글에는 '은의 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심지어 줄거리가 있음. 1. 정말 열심히 홍보해서 예매하지 않을 수 없던 연극이었다. 슥슥 밀어 올려 지나치는 것도 한두 번.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자주 나오면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예매를 하러 들어갔을 때 대부분의 일정이 매진인 상태였다. 다른 날들을 모두 훑어 겨우 한 좌석이 남아 있는 날 몇 개를 찾은 후에야 예매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율석이어서 좋은 좌석, 안 좋은 좌석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나는 극장 가장 안쪽 중간자리에 앉았다. 작지 않은 덩치로 관람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은수의 아들, 예준의 빈소에서 처음 만난 정은과 은수. 예준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후에도 은수는 빈소였던 303호의 조문을..
2024.08.31 -
한국장단음악축제 <장단유희>, 서울남산국악당
""나 이런 거 좋아하네."" 나는 장단은커녕 사물놀이, 연희, 국악 같은 전통음악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학생 때 배운 '자진모리장단'이니 '휘모리장단'이니 '중임무황태'같은 것들이 겨우겨우 떠오를 뿐이다. 어릴 때는 국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안 좋아하다 못해 무서워했던 기억이 있다. 장구와 북, 특히 꽹과리의 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 문화를 가까이할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더욱이 낯설고 재미없는 장르로 남았다. 이 장르가 재밌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연희극을 일로 접하면서였다. 한 연희극에 촬영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관람을 하게 됐는데,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재미없음'의 장벽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우스꽝스러운 표현들, 익숙한 이야기들의 조합과 더불어 ..
2024.08.30 -
<어쩌면 해피엔딩>
의 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즈음 뮤지컬 실황 촬영을 했었다.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이라는 작품이었다. 그 때 카메라를 붙들고 엉엉 울면서 촬영했다. 그 후 두 시간 분량의 실황을 편집하고 나서도 몇 번이고 다시봤다. 가끔은 차에서 노래처럼 틀어둔 날도 있었다. 은 그정도로 나에게 크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2024년 의 소식이 들려왔다. 학생극으로도 이렇게나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인데, 원작은 얼마나 대단할까 싶었다. 일정을 확인하고 가능한 날 표를 예매했다. 티켓팅의 치열함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일정이 안정적이지 않았기에 남들보다 뒤늦게 예매를 했다. 그 탓에 1층 맨 뒷자리 좌석을 잡았다. 그래도 1층인게 어디냐... 생각했다. 오랜만에 본 올리버와 클레어. 첫 넘버에서 조명이 들어오며 ..
2024.08.15 -
<THE NERDCONNECTION 2023>, 너드커넥션과 스태프들
이게 정말 작은 동아리에서 시작된 밴드란 말인가! 00. 너드컨넥션을 만나다 너드커넥션을 처음 접한 건 유튜브뮤직 플레이리스트에 '좋은 밤 좋은 꿈'이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당시 어떤 음악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음악 권태기를 겪던 중이었다. 물론 영화처럼 그 노래를 듣고 '미쳐버린 음악!'이러면서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느 밴드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을 좋은 노래' 정도로 여겼다. 이 즈음에서 하나 찝고 가자면 나는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다. 사실 없다해도 무방할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 '음알못'의 생각을 기록한다 생각해주면 감사할 것같다. 아티스트에 대해서도, 그들을 좋아하는 -나를 포함한- 팬들에게도 기분 나쁘게 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밝힌다. 여하튼 지나가듯 들었던 밴드의 음악이 다가온 ..
2024.01.03 -
<52Hz>, 연희집단 The 광대
01. 연희 재밌네 연희극을 접한 건 이제 반년 정도 됐다. 솔직히 풍악, 판소리, 사물놀이, 이런 것들을 접할 기회가 일상에서 얼마나 있나. 연극, 뮤지컬 보다도 접할 기회가 많이 없고 눈에 보여도 손이 잘 안 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국악은 지루하고 재미없거나 반대로 너무 시끄럽다는 인식 속에 살고 있었다. 그 생각은 반년 전에 '딴소리 판'을 보고 완전히 뒤집혔다. 그 극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들을 거지광대들이 헤집고 다니는 얘기인데, 그들이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움이 웃음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광대극에서 볼 수 있는 시원시원하고 유려한 움직임이 더해져 '오묘한 멋있음'을, 곧 재미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난 그 매력에 빠져 그 후로도 몇 개의 광대극을 더 봤다. 02. 고독으로는 뭔가 아..
2024.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