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3. 18:00ㆍ문화에서 마음 잡기
이게 정말 작은 동아리에서 시작된 밴드란 말인가!
00. 너드컨넥션을 만나다
너드커넥션을 처음 접한 건 유튜브뮤직 플레이리스트에 '좋은 밤 좋은 꿈'이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당시 어떤 음악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음악 권태기를 겪던 중이었다. 물론 영화처럼 그 노래를 듣고 '미쳐버린 음악!'이러면서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느 밴드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을 좋은 노래' 정도로 여겼다. 이 즈음에서 하나 찝고 가자면 나는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다. 사실 없다해도 무방할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 '음알못'의 생각을 기록한다 생각해주면 감사할 것같다. 아티스트에 대해서도, 그들을 좋아하는 -나를 포함한- 팬들에게도 기분 나쁘게 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밝힌다.
여하튼 지나가듯 들었던 밴드의 음악이 다가온 것은 무척이나 개인적인 일이었다. 우선 '좋은 밤 좋은 꿈'으로 플레이리스트에 너드커넥션 노래가 하나 둘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가깝고 소중했던 사람을 떠나보냈고, 그 때 흘러나온 노래가 '우린 노래가 될까'였다. 이 노래에 후렴 가사가 내 귀를 넘어 마음까지 파고 들었는데, 가장 깊게 파고든 것은 2절 후렴 - 아웃트로까지였다.
우린 노래가 될 수 있을까
몇 개의 계절이 지나가면
함께 지새운 밤을 모두
기억할 수 있을까
우린 노래가 될 수 있을까
몇 해의 시간이 흘러가면
함께 울었던 날들 모두
추억이라 부를까
...
이렇게 사라지고 있어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한 채
이 파트에서 가사와 멜로디, 세션의 합이 주는 감정의 전달은 그 때의 나를 울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 떄부터 너드커넥션의 모든 음악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첫 앨범, 싱글, OST 등 그들이 참여한 모든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이렇게까지 한 건 중학교 때 리쌍과 이적에 빠지고난 후로 처음이었다.
그 후로 마음에 들어오는 노래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대나무숲', 'Back in time',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 'Castel' 등등... 사실 모든 노래를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너드커넥션은 k-오아시스다.'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01. 너드컨넥션... 공연한다던데?
그러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너드커넥션의 연말공연 소식을 마주했다. 정확히 말하면 연말공연을 하루 추가해서 한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그 전부터 콘서트에 가고 싶었다. 7월에 했던 <Well! Are you good?> 콘서트도 가고 싶었고 연말콘서트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당시에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콘서트 실황 영상들을 보면서 혼자 마음벅차 했을 때라 더욱 그랬다. 하지만 가난한 영상제작자에게 콘서트 티켓 값은 만만치 않은 장벽이었다.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돈을 아끼면..' 이라는 계산적인 생각은 사회라는 망망대해 한 가운데 빠진 프리랜서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그렇게 콘서트의 존재 사실을 잊고 살면서 고정적인 일이 생겼고, 많지는 않지만 혼자로서는 적당한 금액이 통장에 찍혔다. 그 즈음이 블랙프라이데이, 광군제 기간이었는데, 엄청난 할인율에 힘 입어 촬영 장비와 옷을 말도 안되게 주문했다. 그 때 인스타그램에 '너드커넥션 2023 연말공연 추가회차' 공지가 올라왔다. 정신을 못차리고 소비를 이어가던 나는 어느새 달력에 티켓팅 날짜를 기록해뒀고 티켓팅 당일 시간에 맞춰 표 예매 및 결제까지 끝냈다. 기억으로는 예매 하던 당시에도 '이렇게 돈 써도 정말 괜찮아?' 라는 마음의 소리가 저 깊은 어디에서 소리치고 있었지만, 'ㅇㅇ 괜찮음'하며 막힘없는 예매를 진행했다.
예매한 좌석은 2층 맨 앞이었다. 사실 원래 티켓팅 시간보다 조금 늦게 들어갔고 그 때는 이미 1층 좌석이 매진된 상태였다. 금액도 2층이 조금 더 저렴했기에 맨 앞 자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며 예매를 했다. 사실 말로써 만족한거긴 하지만.... 결국 1층이 부럽기는 했다.
02. 공연 당일!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공연 당일. 본래 공연시간보다 5시간이나 일찍 신촌에 도착했다. 사실 설레서는 아니고 어차피 당일에 일이 없어서 개인 작업이나 할 겸 카페에 가 있으려고 했다. 라고 생각했는데 공연 시간이 다가 올 수록 괜스레 긴장되는 마음이 커졌다. 어떤 가수의 콘서트, 그것도 이정도 규모의 콘서트를 온 것이 처음이었고 당장 이어폰을 통해 전해지는 이 노래를 라이브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설렘을 넘어서 긴장을 만들어 내기 충분했다.
길 것 같았던 5시간도 순식간에 흘러 어느 덧 7시. 관객입장은 30분 부터였기에 슬슬 걸어서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에 도착했을 땐 어느정도 사람들이 차 있었다. 한 편에 마련된 MD판매부스에는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진작 MD 리스트를 본 이 가난한 영상제작자는 그 줄 마저 부러움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한 편엔 포토존이 있었고 또 한 쪽엔 나눔존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곳에 형광팔찌와 스티커들이 놓여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팬분들이 다른 팬들을 위해 직접 준비해서 가져다 둔 것이라고 한다. 가져갈 당시에는 그런건 줄 모르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건 줄 알았다... 당차게 혼자 간 나는 형광팔찌를 혼자서 차려고 도전했고 그 불가능 하다는 것을 20분의 사투 끝에 성공해냈다. 공연 첫 곡 시작도 전에 빠져버렸지만..
관객입장이 시작되고 자리를 찾아 앉으려 할 때 의자에 뭔가가 붙어 있었다. 연말공연 포스터 디자인으로 된 엽서였고 반대편에는 각 멤버들의 한 줄과 싸인이 있었다. 그 엽서를 각 좌석마다 다 붙여둔 것인데, 이런 노력과 섬세함에 시작도 전에 감동해버렸다.
객석을 비추던 불들이 꺼지고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큰 덩치의 누군가가 성큼성큼 걸어 드럼 앞에 앉았다.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만지더니 강렬한 드럼과 함께 조명이 들어왔다. 온 몸을 두근거리게 하는 드럼 소리에 이어 베이스를 맨 또 다른 누군가가 저벅저벅 무대로 나오더니 드럼과 함께 합주를 시작했다. 박재연과 신연태의 합주는 정적이던 관객들을 순식간에 공연에 빠져들게 했다.
그 후로 공연은 2시간 반동안 이어졌다.
두 시간 반동안 무대 위 네명과 객석의 수백명은 그들의 무대와 노래를 너무나도 사랑했다.
박재연이 드럼 앞으로 달려가 본인의 파트를 연주할 때 나는 발을 구르고 문자 그대로 입을 틀어 막았다.
멘트를 잘 못한다면서도 초반에 한 '인트로 개쩔었나요 개절었나요?'도 기억에 남아, 이거 반드시 후기에 써야겠다 싶었다.
하수들 못지 않은 상수(고수)들의 어쿠스틱 파트 또한 완벽하고도 울림 있었다.
신연태의 드럼을 부술듯한 연주는 무대에 몰입하게 해주는 아주아주 큰 역할을 했다.
서영주의 목엔 오디오 플레이어가 있는게 확실하다.
최승원의 기타 솔로에는 패트로누스처럼 영혼이 보였다.
처음으로 콘서트에서 떼창에 참여했다.
앵콜 때 의태딩을 했고 2층 맨 앞 내 자리에서 미친듯이 방방 뛰고 소리를 질렀다. 끝나고 생각해보니 제대로 안보였을 뒷분들에게 좀 죄송했다.
멤버들(신연태 제외...)이 객석으로 내려왔을 때 1층으로 가지 못한 걸 꽤 후회했다.
라이브로 말아주는 'Hollywood movie star'와 'I robbed a bank'의 파괴력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무대 디자인과 조명, 음향은 여느 연극, 뮤지컬보다도 아름답고 조화로웠다.
너드 닉값이라도 하듯 멘트 타이밍마다 자신들의 컨셉을 계속 설명하는게 꽤 웃겼다.
콘서트가 끝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너드커넥션 팬카페 가입이었다. 한창 오타쿠였던 중학교 때를 제외하고는 뭐가 좋아서 카페에 가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어떤 가수, 밴드가 좋아서 팬카페까지 찾아보고 가입하다니.. 이제는 인생이 너드커넥션의 노래로 도배된 듯했다.
사실 이미 꽤 스며 들어있었다. 내가 노래를 들으면서 가장 많은 감정을 느낄 때도 너드커넥션의 노래를 들을 때고, 영상을 제작하면서도 많은 영감을 받고 실제로 영상에까지 제일 많이 활용하는 것도 너드커넥션의 노래들이었다. 내 모든 좋음과 일치하는 밴드, 내가 가진 감정과 경험의 결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표현해내주는 밴드. 콘서트 후기처럼 제목을 달아놓고 내용은 너컨 찬양 투성이지만, 아무렴 뭐 어떤가. 당사자들이 잘 하는 사람들이라 콘서트까지 좋은 것을.. 이번 콘서트를 본 후 조금 바뀐게 있다면 열심히 일 하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공연을 보러 갈 것이다. 언젠가 MD도 맘껏 구매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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