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30. 14:11ㆍ문화에서 마음 잡기

""나 이런 거 좋아하네.""
나는 장단은커녕 사물놀이, 연희, 국악 같은 전통음악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학생 때 배운 '자진모리장단'이니 '휘모리장단'이니 '중임무황태'같은 것들이 겨우겨우 떠오를 뿐이다. 어릴 때는 국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안 좋아하다 못해 무서워했던 기억이 있다. 장구와 북, 특히 꽹과리의 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 문화를 가까이할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더욱이 낯설고 재미없는 장르로 남았다.
이 장르가 재밌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연희극을 일로 접하면서였다. 한 연희극에 촬영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관람을 하게 됐는데,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재미없음'의 장벽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우스꽝스러운 표현들, 익숙한 이야기들의 조합과 더불어 표현 그대로 '신명 나는' 극을 관람(촬영)했다. 그 후에도 해당 극단의 극들을 몇 번 촬영할 기회가 있어 자연스럽게 '연희'를 접하게 되고 그 문화가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희라는 거 정말 재밌는 거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이 극단의 창작연희를 재밌어하는 것인지, 연희와 이 문화를 재밌어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마침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장단유희>라는 축제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마주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냅다 예매했다. 물론 예매 전에 설명을 읽어보긴 했지만 누군지 모르는, 아무튼 대단한 분들의 무지하게 엄청난 공연을 한다는 얘기였다. 관련 없는 얘기지만 드디어 예술인 패스도 사용했다. 야호!
공연 당일 하우스 오픈과 동시에 바로 입장했다. 남산국악당의 첫 소감은 '돈화문국악당의 확장버전'이었다. 전문가들이 들으면 분개할 말 일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모든 게 새로워 작은 요소들을 다 보고 기억할 수 없었기에 극장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소감은 여러 번 다녀봐야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전문가 분들의 너른 이해를 바라는 바이다. 자리에 앉아있으니 객석에 하나 둘 관객들이 차기 시작했고 관객들은 서로 아는 체하며 인사를 나눴다. '...... 학교에 공연 보러 온 게 아닌데 어째서...?'라고생각이 들었지만 이제야 관심이 든, 공연 쪽 은어로 '머글'인 나는 '이런 문화구나'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간 날인 축제 둘째 날 진행된 프로그램은 '장단 크리에이티브'와 '장단 스테이지'였다. '장단 크리에이티브'는 예비 신진예술가 - 프로예술가의 시작인 신진예술가... 의 직전인 예비 신진예술가라고 한다. 마치 침착맨이 말한 '훈수훈수꾼'같은 거랄까. - 의 공연이었다.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학생들이 직접 준비한 무대로, 해금 4중주로 구성된 '팀 레버리', 세 대의 가야금으로 구성된 '가야금 앙상블 더 음' 두 팀이 무대를 채웠다.
먼저 '팀 레버리'의 네 해금은 'Keane'을 떠올리게 했다. 'Keane'은 여타 밴드들과는 다르게 두 대의 피아노가 음악을 이끌고 간다는 점이 특징인데, '팀 레버리'의 음악 또한 그랬다. 특히 자작곡 'Sunlight'에서 한 대의 해금이 주요 멜로디라인을 이끌고 가면 나머지 세 대의 해금이 채워주며 화음과 함께 리듬감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그러했다. 리듬감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Rythme éparpillé II' ( '흩어진 리듬', 유영재 작곡)인데, 음정의 변화는 거의 없고 각자의 해금이 자신의 리듬을 가지고 가는 곡이었다. 그래서 리듬이 흩어지는 것 같으면서 다시 모이기도 했는데, 전체적인 모습을 바라보면 하나의 음악이 되는 것이 마치 점묘화를 보는 듯했다. 중간중간 서로의 합을 맞추려는 목적이 있는 듯 연주가 멈추는 순간에 함께 호흡을 하는데, 그 호흡소리마저 박자로 녹여낸 것이 인상적인 무대였다.
이어진 '가야금 앙상블 더 음'의 무대는 앞선 '팀 레버리'의 무대와 정반대의 소리를 가진 무대로 느껴졌다. 해금이 날카로운 가장자리 속 부드러운 소리를 가지고 있다면 가야금은 둥글면서도 따뜻한 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소리의 특성을 의식이라도 한 듯, 이 팀이 준비한 '실현', '매듭 모리', '숨겨진 바다' 세 곡의 제목과 음악이 모두 따뜻하고 아무것도 짓누르지 않는 곳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찰현악기인 해금과는 다르게 발현악기인 가야금은 상대적으로 장단(여기선 리듬, 박자)을 더 풍성히 표현할 수 있는 듯했다. 한 번에 여러 음계를 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특히 낮은 음의 현을 한 번에 긁어낼 때 (문외한인 나는 이것보다 더 좋은 묘사법을 찾을 수 없다.) 마치 드럼의 로우탐을 강하게 치는 듯한 소리처럼 들렸다. 거기에 실제로 가야금의 몸통을 쳐서 내는 소리가 더해지니 음계가 있는 타악기처럼 보였다.
잠깐의 인터미션을 가진 후 다음 프로그램인 '장단 스테이지'가 진행됐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나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진짜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 공연을 진행했다. 리플릿에 적혀있던 약력만 봐도 '무형문화재' 등이 무조건 적혀있는 분들이었다.
이런 약력을 몰랐더라도 실로 대단하다고 느낄만한 무대가 진행됐다. 이 쪽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무대 위에 설치된 약 한 평 크기의 작은 무대 위에 혼자 앉아 악기 하나로 무대를 채웠다. 말 그대로 무대를 가득 채웠다. 무대 미술도 없고 화려하게 조명을 하지도 않았는데, 연주를 하는 모습과 그 모습에서 나오는 소리가 무대를 넘어 공연장을 꽉 채웠다.
'김소라'의 엄청난 집중력과 표정, '김운석'의 바람 타는 듯, 춤추는 듯 움직이는 몸, '김태영'의 가벼운 움직임에서 나오는 강한 힘, '김복만'의 꽹과리는 그 작은 면에서 다채로운 소리가 나면서 무대 중간을 혼자서 날아다니는 듯했고 '정준호'의 손짓은 장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듯했다.
이어서 '박재천'과 '민은경'의 '심청가 중 심봉사 물에 빠지는 대목'이 시작됐는데, 재즈 드럼을 연주하는 고수와 그에 맞춘 소리꾼의 공연은 심청이를 재즈페스티벌에서 그루브를 타는 MZ심청쓰로 바꿔버렸다.
이 무대가 너무나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동서양의 조화랍시고 그저 '고수에게 드럼채를 주자!'는 식이 아니라 고수의 장단과 판소리를 오랜 기간 분석해 너무나도 잘 녹여낸, 말 그대로 '조화로운' 공연이었다는 점이다.
그 후로 이어진 '장단 시나위'에서는 모든 연주자가 나와 함께 공연을 진행했는데, 리드 악기의 주도권을 갖고 주고 뺏으면서도 모든 악기의 합을 잃지 않는 게 고수들의 재즈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리플릿에는 '풍물, 무속, 민속악 그리고 드럼의 장단까지 서로 다른 주법과 연주스타일을 한 자리에서 감상'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아 리드 악기가 바뀐다고 느꼈던 게 서로 다른 주법을 보여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뮤지컬이 비싸다, 비싸지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나도 티켓값 결제할 때 끝에서 끝까지 고민한다. 심지어 3층 자리를 예약할 때도. 그마저도 결국 예약을 취소한 적도 있다. 그럴 때 K뮤지컬, 전통 뮤지컬, 판소리, 국악, 연희, 사물놀이... 뭐... 어떻게 분류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관심을 갖고 보면 어떨까? 만족감은 동일, 가격은 반의 반!
물론 뮤지컬이랑 비교하는 게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요지는 만만치 않게 재밌다는 점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문화에서 마음 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시 <헤쳐모여 7(The Hechyeomoyeo 7)> (0) | 2024.09.30 |
---|---|
<은의 혀>, 박지선과 윤혜숙 그리고 배우 및 스탭들. (4) | 2024.08.31 |
<어쩌면 해피엔딩> (0) | 2024.08.15 |
<THE NERDCONNECTION 2023>, 너드커넥션과 스태프들 (1) | 2024.01.03 |
<52Hz>, 연희집단 The 광대 (3) | 2024.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