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서 나오는 말들/with_think_rain(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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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실 얼음제거 대소동
얼려둔 초콜렛을 꺼내려 냉동실 문을 열었다. 초콜렛 봉지는 이상하리만큼 축축했고 냉동실 바닥에서부터 방바닥까지 물이 투둑투둑 떨어졌다. 낌새가 이상해 얼음통을 꺼내보니 가득했던 얼음들이 녹아 찰박거리고 있었다. 허겁지겁 다른 것들도 꺼냈다. 얼음틀 속 얼음들은 얼기 전 모양과 같았고 냉동식품들은 흐물거렸다. 냉장고 선이 뽑혀있던 건 아니었다. 냉장고의 상태는 아주 멀쩡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냉동실을 비우니 드러났다. 냉동실의 모든 벽이 성에와 얼음으로 도배돼 있었다. 안그래도 작은 냉동실이었는데, 두꺼운 얼음층이 냉동실을 더 작게 만들었다. 아무튼 벽을 막은 얼음들이 냉동효과를 현저히 떨어뜨렸음엔 틀림 없었다. 나는 냉장고 앞에 마른 걸레를 가득 깔아둔 채 헤어드라이어와 주걱을 들고 비장하게 냉동실을 마..
2024.08.07 -
평생 혼자살다 가지 뭐! 라고 할 뻔
"평생 이렇게 혼자 살다가 죽어도 괜찮겠는데?" 친구한테 말했다. 마음은 말 그대로 '무'의 감정이었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거의 10년을 봐온 친구의 눈에 이렇게 진정성 없는 말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 연애를 끝내고 반년 즈음 됐을 때 환경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집에서 처음 독립을 했고 차도 생겼다. 모든 것이 멈췄던 일상은 삐걱되고 소리가 났지만 다시 조금씩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좋은 사람이 있다며 소개를 해준다는 제의가 몇 번 들어왔다. 29살이라는 나이에 만나는 사람도 없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문제는 내가 누군가를 만날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매 달 내야하는 월세와 공과금, 차량 유지비, 쌓여있는 일정과 내일에 대한..
2024.07.18 -
기록의 이유
나는 약 반년 전부터 가능한 꾸준히 기록하려 노력하고 있다.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에 영상, 글, 사진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시간들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남기는 기록은 단순 내가 겪고 있는 일, 상황을 넘어서 그 안에서 한 생각과 들었던 감정들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것은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이 아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일상을 살아가며 대화하는 시간 속에서 드는 감정과 생각을 흘러가게 두기엔 아쉬웠다. 분명 나는 지금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훗날 비슷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지금처럼 똑같이 느끼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기억해 두면 언젠가 한 단계 더 확장된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
2023.07.23 -
LP의 미학
재작년 생일 때 턴테이블을 선물 받았다. 한창 '레트로 감성'이 유행이었기도 했고 사진으로 남기면 그럴듯한 사진이 나오는 디자인 때문에 그때 받았던 선물 중에선 제일 마음에 들어 했던 기억이 있다. 턴테이블을 그 전까지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인스타그램이나 TV 속... 그러니까 화면 너머에서만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턴테이블, LP는 나에게는 이 세상에 있으나 없으나 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턴테이블을 선물 받으니 괜히 기대되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 나도 '인싸'들이 느끼는 그 '감성'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턴테이블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상자를 뜯었다. 디자인은 좀 좋다는 턴테이블들과는 많이 달랐다. 아기자기하고 장난감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커버를 열어봤을 땐 버튼과 노드들이..
2023.07.16 -
칭찬을 조각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칭찬을 받은 적이 언제인가. 아마 최근에 업로드한 칭찬에 관한 이야기 속 연락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칭찬을 들을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옛날에는 집 앞 슈퍼에서 두부 한 모 사 오는 것만으로도 잘했다는 칭찬과 약간의 보상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못하는 것은 응당 쓴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으로 변했다. "상우는 어른한테 참 예의가 발라요. 볼 때마다 인사를 한다니까." (초등학생 어느 때, 동네 어른) "너 사진 진짜 잘 찍는다!" "학교 사람 중에서 네가 제일 카메라 잘 다루잖아." (대학생 어느 때, 동기) 칭찬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때 들었던 칭찬 덕에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 노력하게 됐고, 대학생 때 들었던 칭찬 덕에 지금도 카메..
2023.06.18 -
영화 '조심히 가' 그리고 칭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최근 이 말을 더욱 실감하게 되는 나날들이다. 몇 달 전 내가 영상을 시작하게 된 이유,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 내가 즐거운 게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단순히 영상을 만들었을 때 느꼈던 성취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상 제작 그 자체로 재미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실제로 1학년 때 공모전 영상을 촬영한 지 세 시간 만에 재미없다며 때려치웠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드는 생각은 '내가 왜 영상을 재밌어했지?' 일 것이다. 당연 적절한 보상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칭찬을 받은 것은 복학하던 해 들었던 강의의 과제 덕분이었다. 그 강의는 한 학기에 두 개의 영상을 제작해야 했다. 처음 제작한 영상은 그럴듯한 아이..
2023.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