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3. 15:00ㆍ생각에서 나오는 말들/with_think_rain

나는 약 반년 전부터 가능한 꾸준히 기록하려 노력하고 있다.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에 영상, 글, 사진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시간들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남기는 기록은 단순 내가 겪고 있는 일, 상황을 넘어서 그 안에서 한 생각과 들었던 감정들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것은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이 아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일상을 살아가며 대화하는 시간 속에서 드는 감정과 생각을 흘러가게 두기엔 아쉬웠다. 분명 나는 지금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훗날 비슷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지금처럼 똑같이 느끼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기억해 두면 언젠가 한 단계 더 확장된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생각을 꺼내 들고 세상에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마음먹었다고 표현한 것은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의식하진 않았지만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풀어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짧게 짧게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그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오글거린다.', '관종'같은 말들이었다. 때로는 내가 쓴 글의 문장을 떼어내서 놀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때는 내가 한 말들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고 겉으론 '허허' 넘기면서 속은 어지럽곤 했다. 그렇게 점차 글을 쓰지 않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내가 발산하지 못한 내 감정들이 몸에 쌓이는 것을 보게 됐다. 어떤 형태가 됐든 그 생각을 세상에 꺼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을 발견했을 때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준 부끄러움이 나를 잡기도 했고 그 원인이 내가 만들어낸 것들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일을 쉬면서 내가 만들고 싶던 영상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한창 일하면서 만들지 못했던 것들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릿속에 그리던 영상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좌절하고 잠깐 멈추기도 했다. 얼마 안 지나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들은 계속해서 생겨났기에 또 카메라를 잡고 있었다. 그렇게 카메라를 잡다 보니 자연스레 사진도 다시 찍게 됐다. 사진은 그 자체보다 이야기가 담길 때 특별해진다. 정지된 이미지가 이야기의 연속성과 맞물리며 이미지의 앞 뒤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도 다시 쓰게 됐다. 이 모든 것들을 다시 시작하면서 처음 생각했던 것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비록 부족할지라도'였다. 부끄럽지 않고 싶었던 나는 완벽한 것들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영상도 아예 시작조차 못했었다. 완벽은커녕 부족함 천지인 결과물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고 의지는 중력가속도를 만난 것처럼 빠르게 사라져 갔다. 이런 문제 파악은 내 초기 마음가짐을 설정하는 데 영향을 줬다. 그래서 유튜브 채널을 처음 개설했을 때도 '못하면 어때, 하고 싶으면 해야지.'라는 설명을 적어두었다.
나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 것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을 되돌아보면 놀러 갔던 기억, 가십거리에 대한 얘기를 나눴던 순간이 아니라 감정적이거나 철학적 생각을 주고받았을 때였다. 그래서 영상, 글을 통해 내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고 그 생각에 대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콘텐츠들에 비해서 썩 재미있는 내용이 담겨있지는 않다. 글에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영상도 생각 없이 보기엔 단순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것도 아니어서 일반화하거나 객관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지식도 아니다. 더 나아가 그 생각과 감정이 여느 성인들의 말과 행동처럼 타인의 귀감이 되는 것도 아니니, 사실 많은 사람들이 봐주지 않는 것도 당연한 듯하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이라도 이 기록을 보고 한 번 더 생각하고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와 내 유튜브 영상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일종의 라디오 콘텐츠인 '우리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에 대한 얘기였다. 친구는 이동을 하거나 게임을 할 때 함께 들으면 집중도 잘되고 듣기 좋다고 내게 얘기해 주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많은 자극을 받는다고 얘기해 주었다. 약 한 달 전쯤에는 업로드한 단편영화 '조심히 가'에 대한 좋은 평과 배우님의 캐스팅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여자친구는 내 창작물들을 바탕으로 자신이 느낀 것들을 얘기해 준다. 이러한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남기고 싶은 의지는 더욱 커진다. 대화하고 싶은 주제를 계속 던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영상을 만들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비록 짧고 단순하며 자극적인 것들이 더 이목을 끌고 돈을 벌어다 주는 시대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는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많은 얘기를 담을 수도 있고 또 때로는 하나의 주제를 넓게 펼칠 수도 있으며 또 깊이 빠져들 수 있다. 나의 마지막 목표는 철없던 시절과 다른 것이 없다. 철없던 시절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해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 연구자료로 발견되는 것이 꿈이었다. 지금은 내가 남기는 것들이 후대에게 발견돼 그들에게 무엇이든 줄 수 있는 자료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영감이든, 고고학적 자료든, 이면지든.


'생각에서 나오는 말들 > with_think_ra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냉동실 얼음제거 대소동 (0) | 2024.08.07 |
---|---|
평생 혼자살다 가지 뭐! 라고 할 뻔 (0) | 2024.07.18 |
LP의 미학 (1) | 2023.07.16 |
칭찬을 조각 한다는 것 (1) | 2023.06.18 |
영화 '조심히 가' 그리고 칭찬 (4) | 2023.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