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실 얼음제거 대소동

2024. 8. 7. 15:27생각에서 나오는 말들/with_think_rain

대충 이런 냉장고다. <인류애 대상승 냉장고>, 2024



얼려둔 초콜렛을 꺼내려 냉동실 문을 열었다. 초콜렛 봉지는 이상하리만큼 축축했고 냉동실 바닥에서부터 방바닥까지 물이 투둑투둑 떨어졌다. 낌새가 이상해 얼음통을 꺼내보니 가득했던 얼음들이 녹아 찰박거리고 있었다. 허겁지겁 다른 것들도 꺼냈다. 얼음틀 속 얼음들은 얼기 전 모양과 같았고 냉동식품들은 흐물거렸다.

냉장고 선이 뽑혀있던 건 아니었다. 냉장고의 상태는 아주 멀쩡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냉동실을 비우니 드러났다. 냉동실의 모든 벽이 성에와 얼음으로 도배돼 있었다. 안그래도 작은 냉동실이었는데, 두꺼운 얼음층이 냉동실을 더 작게 만들었다. 아무튼 벽을 막은 얼음들이 냉동효과를 현저히 떨어뜨렸음엔 틀림 없었다.

나는 냉장고 앞에 마른 걸레를 가득 깔아둔 채 헤어드라이어와 주걱을 들고 비장하게 냉동실을 마주했다. 드라이어로 얼음들을 적당히 녹이고 주걱으로 벽을 긁어냈다. 처음엔 단단히 붙어 조각조각나던 얼음들이 벽과 틈이 생기자 뭉텅이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음들과 성에들을 통에 담아 싱크대에 버렸다. 양이 얼마나 많았던지 두 번에 나눠 옮겼어야 했다. 얼음들을 다 긁어내고 냉장고 안에 녹은 물들을 닦아냈다. 처음 냉장고를 받아 청소했던 때처럼 텅 비고 깔끔한 상태로 되돌아갔다. 다시 냉동식품을 넣고 얼음틀에 물을 새로 받아 얼음을 얼렸다. 후에 확인해보니 다행히 모든 것이 다시 꽝꽝 얼어붙었다.

이 일을 친구한테 얘기하니까 친구가 냉장고가 고장난 거 아니냐 물었다. 중고로 산 냉장고여서 고장 걱정이 있긴 했지만, 냉장실에 있는 물도 어는 것을 보면 성능 하나는 확실했다. 되려 이번 일로 냉장고랑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평균적으로 일을 잘 하는데 컨디션을 타는 모습이 내 모습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디션이 떨어지면 잘 하던 것도 못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내려고 꾸역꾸역 움직이는 내 모습이 스쳐지나 갔다. 냉동실도 꾸역꾸역 냉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 물론 미리 성에와 얼음들을 확인하지 않고 대비하지 않은 내 탓이긴 했다. 그럼에도 냉동실은 자기의 역할에 충실했다. 되려 그게 얼음층을 더 두텁게 만드는진 몰랐을테지만.

얼음을 제거할 시간이 필요하다. 제거하기 전에 얼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더 좋다. 성에가 쌓이는지, 얼음이 생기는지 계속 들여다 봐야 한다. 그러면 더 수월하게 얼음층을 제거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리 제거하지 못해 냉장고를 내다버릴 필요는 없다. 잠깐 비우고 얼음을 치워주면 그만이다.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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