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혼자살다 가지 뭐! 라고 할 뻔

2024. 7. 18. 16:07생각에서 나오는 말들/with_think_rain

"평생 이렇게 혼자 살다가 죽어도 괜찮겠는데?" 친구한테 말했다. 마음은 말 그대로 '무'의 감정이었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거의 10년을 봐온 친구의 눈에 이렇게 진정성 없는 말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 연애를 끝내고 반년 즈음 됐을 때 환경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집에서 처음 독립을 했고 차도 생겼다. 모든 것이 멈췄던 일상은 삐걱되고 소리가 났지만 다시 조금씩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좋은 사람이 있다며 소개를 해준다는 제의가 몇 번 들어왔다. 29살이라는 나이에 만나는 사람도 없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문제는 내가 누군가를 만날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매 달 내야하는 월세와 공과금, 차량 유지비, 쌓여있는 일정과 내일에 대한 걱정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니 깊은 관계를 만들어내는 건 정말이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이 될 때 즈음 이렇게 사는 것도 꽤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집, 나 혼자 먹고 살 수는 있을 정도의 수입, 주변에 남아있는 좋은 사람들,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대로 일정을 잡고 온전히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존재. 가끔 내 하루를 공유할,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것이 외롭게 느껴질 때가 있었지만 주변에 가득찬 '나의 선호'들은 그 외로움을 금방 잠재워 주었다. 그 때  '혼자사는 거 좋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큰 사건이 생겼다. A가 내 삶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관계에 있어 부담이 많은 나는 각 사람마다 각기 다른 바운더리를 허용한다. 누구는 여기까지, 또 다른 누구는 그것보다 가까이, 다른 누군가는 저 멀리까지만 다가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A가 그 바운더리를 훌쩍 뛰어넘어 들어왔다. 나도 싫지는 않았기에, 아니 오히려 이렇게 먼저 다가와줘서 고마웠기에 내 바운더리의 가까운 곳을 열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며 먼저 다가온 경험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나도 그 상대에게 이미 약간의 호감이 있었기에 무척 기뻤다. 그 후 메말라버린 땅이 점차 비옥해져가듯 마음은 행복으로 젖었다.

결과를 먼저 꺼내보자면 결국 잘 안됐다. 생각했던 것보다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대화는 계속해서 엇났다. 나는 감정을 앞세워 이 다름이 서로의 보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지만 현실적으로 큰 비용이 따를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너무 신나버려 표현을 절제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냅다 좋다고 표현을 해대니 어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금새 관계가 정리됐다.

  기대가 컸던만큼 관계 실패의 여파는 꽤 강력했다. 누가보면 1년은 만나고 헤어진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봤자 1주일도 채 안되는 시간이었고 실제로 연애를 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때는 '나는 못난 사람'이라는 둥, '앞으로의 어떤 관계도 갖지 못할거야'라는 둥, '사회성 결여'라는 둥 스스로를 지하 속으로 끌고갔다. 감정의 여파가 잦아들고 상황을 다시 바라 봤을 때 비로소 무엇이 부족했는지가 보였다.

나는 여전히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믿기에 관계가 깊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는 과하게 행동하곤 한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과한 농담을 건내거나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몇 번은 그 모습이 재밌을지 몰라도 반복되면 불쾌해지고 의도와 다르게 분위기를 망치게 된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면 아예 말을 잃는다. 그 외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온전한 내 모습인데, 분명 재미없어할 것이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모습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마디 건내다가 침묵. 또 몇 마디 건내다가 침묵.... 머릿속은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엄청나게 고민한다.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무례하지 않게 드러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나에 대해 솔직할 필요는 없지만 반대로 나를 너무 숨길필요도 없다. 이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쉽사리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예전과 다르게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말을 붙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발전적인 모습이라고 위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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