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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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혼자살다 가지 뭐! 라고 할 뻔
"평생 이렇게 혼자 살다가 죽어도 괜찮겠는데?" 친구한테 말했다. 마음은 말 그대로 '무'의 감정이었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거의 10년을 봐온 친구의 눈에 이렇게 진정성 없는 말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 연애를 끝내고 반년 즈음 됐을 때 환경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집에서 처음 독립을 했고 차도 생겼다. 모든 것이 멈췄던 일상은 삐걱되고 소리가 났지만 다시 조금씩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좋은 사람이 있다며 소개를 해준다는 제의가 몇 번 들어왔다. 29살이라는 나이에 만나는 사람도 없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문제는 내가 누군가를 만날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매 달 내야하는 월세와 공과금, 차량 유지비, 쌓여있는 일정과 내일에 대한..
2024.07.18 -
사랑니를 빼다
사랑니가 세상에 나온 건 몇 년 전 일이었다. 매년 치과에 스케일링을 받으러 갈 때면 "이 사랑니는 대학병원 가서 빼셔야 해요."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거 꼭 빼야 할까요?"라고 물었고 또 그때마다 선생님은 "당장 불편하지 않으시면 괜찮으세요."라고 답해주셨다. 그 대답 덕에 소문으로 무성한 '사랑니의 고통'을 피해 몇 년을 뽑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방치하니 사랑니는 점점 더 고개를 내밀었고 그 사이에 음식물이 끼는 경우도 잦아졌다. 사랑니가 많이 나왔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괜스레 사랑니 때문에 다른 치아들도 밀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일주일전 강렬하게 들었다. 그날은 오전부터 기분 나쁜 편두통이 있었고 그 위치에서 선이라도 긋듯 왼쪽 사랑니부근까지 이어져 ..
2023.12.14 -
나의 동네, 나의 역사 : 06. 서운체육공원
이곳이 이렇게 변했을 줄이야. 서운체육공원은 산책로 한편에 있는 공원이다. 다른 공원들과 다르게 넓은 공터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운동기구, 농구대, 축구대, 인라인 스케이트장까지 갖추고 있어 동네사람들이 마음껏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다. 게다가 동네 행사가 있을 때면 이곳에 있는 야외 공연장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고 가끔은 불꽃놀이가 진행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에게 화장실이나 매점 등의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변화를 알아챈 것은 사진을 촬영하러 가면서였다. 내 기억 속 공원은 위에 적은 넓은 터와 농구대와 축구대, 커다란 사이클 경기장, 그리고 테니스를 할 수 있는 건물 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많은 변화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되려 오랜 시간 동안 ..
2023.08.23 -
나의 동네, 나의 역사 : 05. 굴포천 산책로
집에서 약 10분 정도 걸어 나가면 굴포천을 중심으로 한 산책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운동을 하기도, 산책을 하기도 한다. 이 길은 꽤 자주 바뀌지만 큰 변화를 주는 곳은 아니다. 자주 바뀌는 것은 아마도 때가 되면 보도블록을 바꾸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변화를 주어도 굴포천의 물이 깨끗한 날은 손에 꼽는다는 점이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지선 때 굴포천 정비 사업을 공약에 반드시 껴넣는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곳의 문제가 그리 쉽게 해소될 것같지는 않다. 그래도 예전만큼 냄새를 풍기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이 산책로의 특별한 점은 동네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굴포천을 기준으로 한 쪽편으로 아파트 단지, 문화의 거리, 구청 등이 있고 반대 편으로는 서운체육..
2023.08.16 -
나의 동네, 나의 역사 : 04. 광명아파트
광명아파트는 나한테 있어서 통로 역할을 하던 장소였다. 동네 큰 도로, 마트, cgv 등 놀기 위한 장소를 가기 위해서 이쪽 길을 통과해 지나가는 것이 가장 빨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한 친구들 중 이곳에 사는 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놀러 올 일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광명아파트가 왜 아파트로 불리는지는 항상 의문이었다. 손으로 세어봐도 우리 집보다 한 층 더 많은 다섯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도 없고, 사실상 우리 집 근처에 있던 빌라들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점이 있더라면 경비아저씨들과 경비실이 있다는 것, 주차장이 깔끔히 정리돼 있다는 것, 놀이터가 있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한창 아파트와 빌라의 명칭에 민감했던 나는 주변에 서있는 층 높은 아파트들과 다른 그 모습을 인정할 ..
2023.08.09 -
나의 동네, 나의 역사 : 03. 집 앞 골목길
집 앞에는 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골목길이 있다. 주차장 옆 좁은 골목길, 교회 뒤편으로 나가는 골목길, 차가 드나드는 경사진 골목길. 이 세 개의 골목길은 각기 다른 모양새와 쓰임 덕에 각기 다른 기억으로 남아있다. 좁은 골목길 주차장의 옆으로 돌아가면 거리로 나갈 수 있는 아주 좁은 골목길이 있다. 이 곳은 좁은 만큼 아늑한 느낌을 준다. 거리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두 명은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덕에 거리에서 오는 소음이 많이 가려진다. 그래서 해가 따뜻하게 들어오는 때나 어두워진 밤에 이 골목에 들어서면 괜히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시선에 들어오는 골목길의 풍경도 한 몫하는데, 맑은 낮에는 따뜻한 햇볕과 화단, 붉은색의 단독주택이. 비 오는 날 바닥, 담벼락, 실외기에..
2023.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