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6. 19:00ㆍwith_essay_rain/나의 동네, 나의 역사
집에서 약 10분 정도 걸어 나가면 굴포천을 중심으로 한 산책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운동을 하기도, 산책을 하기도 한다.
이 길은 꽤 자주 바뀌지만 큰 변화를 주는 곳은 아니다. 자주 바뀌는 것은 아마도 때가 되면 보도블록을 바꾸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변화를 주어도 굴포천의 물이 깨끗한 날은 손에 꼽는다는 점이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지선 때 굴포천 정비 사업을 공약에 반드시 껴넣는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곳의 문제가 그리 쉽게 해소될 것같지는 않다. 그래도 예전만큼 냄새를 풍기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이 산책로의 특별한 점은 동네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굴포천을 기준으로 한 쪽편으로 아파트 단지, 문화의 거리, 구청 등이 있고 반대 편으로는 서운체육공원과 몇 채의 빌라, 밭이 있다. 길 끝으로는 고속도로가 보이기도 한다. 그 덕분에 가끔 빽빽한 건물과 사방에 울리는 차 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면 굴포천을 넘어 밭길로 향한다. 한창 사람들이 운동하기 좋은 시간대에는 이 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조용하고 한적한 길이다.
산책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초록색 플라스틱 지붕이 얹힌 작은 건물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동네의 무료 헬스장으로 팔구 클럽이라는 동호회 분들께서 운영하시는 곳이라고 한다. 처음 이곳에 가기 전에 근육 우락부락 사람들 틈에 껴있는 뉴비의 모습을 상상했다. 실제로 가보니 근육 우락부락한 어른들 틈에 껴있는 젊은이가 됐다. 다들 새벽같이 나와 말 그대로 '쇠질'을 하는 강력함이 뿜어져 나오는 공간이었다. 여러모로 특이한 공간이지만 더해서 특이한 점은 이 헬스장이 두 채라는 것이다. 나머지 한 채는 바로 옆에 있는데, 그곳은 '여성전용 헬스장'이다. 그 안에서도 많은 분들이 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공간을 나눠둔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더 쾌적한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게 된 듯했다.
최근 이 헬스장과 이어진 길이 공사를 마쳤다. 그 덕분에 굴포천을 찾기가 더 좋아졌다. 본래 굴포천 산책로를 내려가기 위해서는 천을 건너가서 내려갔어야 했는데, 길이 정비된 덕분에 천을 건너가지 않고서도 내려갈 수 있게됐다. 사실 별 차이 없는 거리지만 천이 만들어내는 심리적인 요인은 꽤 큰 영향을 준다.
굴포천에서 굴다리를 넘어가면 옆 동네로 넘어갈 수 있다. 예전에 한창 '네아버 붐', '짤방' 등이 유행했을 때 이 굴다리에서 '싱하횽'이 나온다는 우스갯소리를 나누고는 했다. 중학생 때 한 번은 친구들과 함께 이 길을 걸었는데, 이 굴다리에서 담력시험을 했었다. 굴다리를 한 번 들어갔다 오는 것이 목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이지만, 마치 게임에서 레벨이 부족해 다른 지역으로 못 넘어가듯 그때의 내 활동반경 또한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굴다리에 들어가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아 들어가지 못했다. 쫄보였다. 그와 다르게 친구는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별 거 없는데?'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학생 때 한 번 이 굴다리를 지나쳐 가는데 세 명의 사람이 한 쪽 벽에 모여 있었다. 두 명은 서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투명한 랩에 칭칭 감긴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때 시간은 날이 저문 오후 8시 정도였고 그때 동네 주민들이 꽤 지나다니고 있을 시간대였다. 서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6mm 카메라를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대학교 과제 혹은 단편 영화를 만드는 모습이었던 듯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에 그 인원으로 그곳에서 자신들의 열정을 쏟아내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나도 대학교 와서부터 단편영화, 각종 영상들을 제작하다 보니 새삼 그 열정과 노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체감이 된다.
현재는 굴다리들이 다 정비가 됐다. 예전엔 텅스텐 조명에 벌레가 들끓을 것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전구도 바꾸고 도색도 다 새로한 덕에 꽤나 지나다닐만한 곳이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 생기는 거미줄들을 매번 없애거나할 수는 없지만 불량배가 나올것만 같은, 범죄가 일어나기 쉬어보이는 이미지를 벗어난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 변화인지 모른다. 그 덕분에 예전에 비해 더 많은 주민들이 이 곳을 통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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