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네, 나의 역사 : 04. 광명아파트

2023. 8. 9. 19:00with_essay_rain/나의 동네, 나의 역사

광명아파트 입구

광명아파트는 나한테 있어서 통로 역할을 하던 장소였다. 동네 큰 도로, 마트, cgv 등 놀기 위한 장소를 가기 위해서 이쪽 길을 통과해 지나가는 것이 가장 빨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한 친구들 중 이곳에 사는 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놀러 올 일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광명아파트가 왜 아파트로 불리는지는 항상 의문이었다. 손으로 세어봐도 우리 집보다 한 층 더 많은 다섯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도 없고, 사실상 우리 집 근처에 있던 빌라들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점이 있더라면 경비아저씨들과 경비실이 있다는 것, 주차장이 깔끔히 정리돼 있다는 것, 놀이터가 있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한창 아파트와 빌라의 명칭에 민감했던 나는 주변에 서있는 층 높은 아파트들과 다른 그 모습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곳에 사는 친구들은 '아파트'라는 이름 안에서 괜히 으스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광명아파트는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학교 등굣길 방향이 반대쪽이었기에 그 길을 지나갈일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등굣길이 또 바뀌어 광명아파트를 다시 애용하게 됐다. 새벽녘에 등교할 때, 밤늦게 하교할 때, 주말에 학교에 갈 때도 항상 광명아파트 내 길을 가로질러 갔다. 그 길로 가는 것이 가장 빨랐기 때문이었고 한 편으로는 좋아하던 친구를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한창 SNS가 빠르게 발달하던 때 예전 친구들과 연락이 닿아 쉬지 않고 연락을 하며 지냈었다. 그중 이 친구도 있었는데, 연애라는 것이 궁금해질 시기에 매일같이 연락하는 이성친구가 있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설렘을 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등하교할 때, 주말에도 혹여나 지나가다 이 친구를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지나가고는 했다. 그럼에도 길에서 그 친구를 직접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런 어린 생각과 감정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광명 아파트는 잠시 도망치기 좋은 장소이기도 했다. 아파트의 난간 너머로는 왕복 6차로의 큰길이 있었고 이 동네에 꽤 큰 교통 축에 속했다. 그러다 보니 차량들의 소음도 꽤 심했고 넓은 도로에 비해 무척이나 좁은 인도는 심리적으로 괜히 위축되게 만들거나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반대로 광명아파트를 가로지르는 길은 차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데, 차가 몰리지는 않다 보니 사람이 중심이 된 길이었다. 거기에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몇몇 개의 가로등이 은은하게 길을 비추고 있어서 사람과 소음 속에 숨고 싶을 때 언제든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실제로 하교하는 길에 당장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때는 단지 내 큰 도로 반대편에 나있는 좁은 길목이나 가로등이 없는 놀이터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다 들어가고는 했다.

광명 아파트 자체는 내가 큰 추억거리가 아니지만 내 추억거리들로 가는 길목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정말이지 놓치기 쉬운 추억 중에 하나다. 중요도와 무관하게 분명한 내 추억거리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시작한 목적과도 가장 부합하는 장소지 않을까 싶다. 나도 모르게, 지나쳐 흘러가는 곳이던 이 곳을 남긴다는 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