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네, 나의 역사 : 02. 옥상, 가로등, 주차장

2023. 7. 26. 19:00with_essay_rain/나의 동네, 나의 역사

내가 사는 곳은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큰 변화가 없어서 달라진 점을 찾아보려면 자세히 뜯어봐야 한다. 빨, 초, 검의 옥상처마, 까슬까슬한 외벽, 살짝만 밀면 부러질 듯한 베란다 난간들, 나와있는 실외기들 까지. 내가 이사 온 2002년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한 것 없이 대부분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척이나 미미한 그러데이션으로 가끔 '저기가 저렇게 돼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옥상

어릴 적 옥상은 이불 빨래 건조장, 금단의 장소. 두 가지 키워드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어머니께서 이불빨래를 하실 때면 꼭 옥상에 있는 빨랫줄에 널고는 하셨다. 그래서 이불빨래를 하시는 날에는 어머니를 쫓아 올라가 이불을 하나하나 품에 안은 채 옆에서 기다렸다. 여러 장의 이불을 하나하나 가져가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빨랫줄은 내가 점프해야만 닿는 높이에 있었기에 내가 직접 이불을 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내 품의 이불을 가져가 걸고 있을 때면 그 옆에서 이불이 바닥에 쓸리지 않도록 들고 있었다. 이불을 다 널고 집에서 놀고 있다가 다시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가지러 가, 어느새 포근하게 마른 이불을 품에 안고 내려왔다. 그리고 얼른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의 품 속에서 휘적 거리며 놀고는 했다. 옥상의 빨랫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불을 빨면 웬만해서 옥상에 가져가 말려두곤 한다. 이제는 점프를 뛰지 않아도, 혼자서 가도 손쉽게 이불을 널 수 있게 됐다.
이불 빨래를 할 때를 제외하고 옥상은 금단의 장소였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안전이라고는 보장되지 않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옥상에는 높은 펜스는커녕 어린아이도 손쉽게 넘어갈 수 있는 낮은 벽이 유일한 안전장치였다. 집 앞 큰 횡단보도 너머도 혼자서는 못 가게 하셨던 부모님에게 옥상은 더없이 위험한 장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옥상은 나에게 있지만 없는 장소처럼 여겨졌다. 비로소 그 장소를 제대로 쓰기 시작한 것은 2022년 정도부터였다. 옥상에서 사진이나 영상에 필요한 인서트들을 찍어보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올라가 가만히 앉아 있어보기도 했다. 가끔은 기타를 챙겨가 노래를 부르다 내려오기도 했다. 지금은 높은 의자도 하나 가져다 뒀고 턱걸이 기구까지 생겨 꽤 괜찮은 놀이터가 만들어졌다.
지금의 옥상은 나에게 확장된 공간으로 사용된다. 예전에는 문 닫은 내 방이 나만의 장소였다면 아무도 없는 옥상도 내 영역 중 일부에 포함된 것이다. 이곳에서도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옥상 빨랫줄(좌) 옥상에 있는 화분(우), 높이가 낮다 


 가로등

우리 집 앞에는 가로등이 없다. 그래서 밤이 되면 말 그대로 깜깜해진다. 특히나 밤이 일찍 찾아오는 겨울이면 9시만 돼도 골목길의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 대신 집 앞과 골목을 밝혀주는 것은 건물 입구에 있는 입구등이었다.
입구등은 센서등이 아니다. 정확히는 건물 입구 안에 있는 등은 센서등이지만 바깥에 나와있는 등은 직접 켜야 하는 등이다. 벽에 나있는 스위치를 한 번 누르면 켤 수 있다. 학창 시절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불이 켜져 있었다. 마치 고생했다고 인사해 주는 듯이 조용히 불이 켜져 있었다. 불을 켜는 행동 자체가 힘든 일은 아니지만 불을 켜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사소하기에 놓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켜져 있는 불에 이웃의 친절이 느껴졌던 듯하다.
20대 중반을 넘어서던 어느 날 집 앞에 드디어 가로등이 생겼다. 정확히는 가로등이 아니라 전기를 다룰 줄 아는 이웃분께서 전기를 따다가 어두운 골목에 가로등을 설치하신 것이었다. 그 덕분에 집 앞 골목은 전보다 더 안전해진 듯했다. 빛 그 자체가 주는 따뜻함을 넘어서는 이웃의 친절이 주는 따뜻함은 괜히 그 골목에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웃 주민분이 직접 설치하신 가로등. 없을 때는 작은 창으로 새어나오는 빛이 전부였다.



 주차장

내가 사는 빌라 단지에는 별도의 주차장 자리가 있지는 않다. 옛날에는 그나마 건물들 사이 공간에 주차라인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이미 다 없어졌다. 사실 옛날에도 선들이 희미해서 있으나 마나 하기도 했다.
한 건물에는 반지하처럼 나 있는 주차장 자리가 있기도 했다. 물론 그 자리를 주차장으로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공간은 수많은 자전거들과 가구들의 무덤이었다. 언제부터 놓여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굳이 용도를 정의해 보자면 빌라 주민들의 공동창고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내 자전거도 이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는 했다. 마땅히 비를 피하며 자전거를 세워둘 만한 공간은 중간층 계단 아니면 이 주차장뿐이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새로 산 날도 그랬다. 부모님을 졸라 마트에서 작은 자전거를 샀다. 새 자전거에 신난 나는 마트에서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 주차장 한 편에 잘 세워놨다. 그런데 다음 날 등굣길에 타려고 보니 자전거가 사라져 있었다! 그때 돈으로 10만 원이 넘는 자전거를 사자마자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어린 나에게 굉장한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이 사실을 부모님께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무서웠다. 자전거를 제대로 세워 놓지 않았다고 혼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그 주차장에는 빌라 앞 골목을 밝히는 어떤 빛도 들어갈 수가 없어 굉장히 어두운 곳이다 보니 한 밤 중에는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아 들어가기 무서운 곳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자전거 도둑이 어떻게 알고 새 자전거를 훔쳐갔나 싶었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라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다행히도 혼나지는 않았다. 대신 며칠 후 새로 생긴 중고 자전거는 꼭 2/3층까지 들고 올라가 세워놓게 됐다.
그 주차장은 어느 날 샌드위치 패널로 막혔다. 어린 시절 나름 탐험의 공간,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 보는 하나의 '도전하는 공간' 이었던 곳이 이제 벽으로 꽉 막히자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아쉬운 마음만큼이나 누가 이 벽을 세웠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양의 자전거와 가구들, 햇빛이 들지 않고 뭐 하나 조금만 건드려도 벌레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그곳을 어떻게 치웠는지 제일 의문이었다. 아직 그곳의 문이 열려있거나 드나드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어느 날 꽉 닫혀버린 주차장. CCTV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