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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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헤쳐모여 7(The Hechyeomoyeo 7)>
전시를 했다. 뭐 개인전같이 엄청난 것을 한 건 아니고, 그룹전에 한 작품 올렸다. 물론 이것도 꽤 멋있는 일이긴 하다. 이번 전시에 올린 작품은 작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갔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순례길 2일 차.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 데 레이로 가는 길이었다. 순례길을 걸은 지 얼마 안 돼 다음 마을까지 얼마나 걸릴지 확신이 없었기에, 동트기 전부터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마을을 벗어나 산 길에 접어들 때 즈음 저 멀리서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주변은 금세 환해졌다. 그럼에도 이른 출발, 비수기 탓에 길을 걷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시골을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새벽 산은 안개가 자욱하다. 자욱한 안개로 인한 짧은 시야, 보이지 않는 사람, 내 걸음과 가방과 옷이 마찰되는 소리만 있는, 이 오르..
2024.09.30 -
나의 동네, 나의 역사 : 00. 프롤로그
우리 동네는 구역이 나눠져 있었다. 저 쪽은 아파트 단지들, 이 쪽은 빌라촌. 그 덕에 초등학교 때 '아래 동네는 못 사는 애들'이라는 소리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랬던 빌라촌에 10층이 넘어가는 오피스텔이 올라가고 있다. 유현준 교수의 책 에서 아이들은 공간을 장소로 만든다고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동네의 곳곳을 누비며 탐험을 했던 적이 언제일까. 내가 우리 동네를 장소로 생각하고 만들었던 마지막은 언제일까. 까마득한 옛날의 기억을 뒤로하고 지금은 익숙하다는 느낌으로 20년 넘게 산 이 동네를 흘려보내 듯 지나치며 살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카페 '미드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동네에선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디자인의 카페. 원래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비로소..
2023.07.12 -
카메라, 삼각대 그리고 북한산
'가? 말아? 가? 음... 말아? 아니야 가?' 낮에는 무덥다가도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리는 초여름. 나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북한산에 갈까 말까.' ❓그게 뭔 고민이야..? 사진에 다시 취미를 붙이면서 공모전에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공모전 사이트에 있는, 일정이 맞는 모든 공모전을 정리해서 달력에 적어뒀다. 그 중 제일 앞에 있던 공모전이 바로 "2023 국립공원 사진 공모전" 사실 국립공원이라는 게 집 앞에도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경기권에는 북한산이 유일했다. 그 때부터 북한산에 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 고민을 한 이유는 특별하진 않다. 귀찮음 그리고 근거 없는 불안감. 사실 산을 등산한다는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기 어려운 것이다. 심지어 집 뒤에 있는 ..
2023.06.11 -
미드테이블
집 앞에 미드테이블이라는 카페가 생긴 지 1년이 지났다. 물론 처음 가 본 건 한 달 전이었다. 처음에 생겼을 때 '우리 동네에 이런 카페가 생기다니..'라고 생각했다. 본래 동네에 있던 커피 프랜차이즈, 개인 카페들과는 다르게 성수동에서나 볼법한 카페였기 때문이다. 통유리로 된 벽에 적은 수의 테이블, 벽 곳곳에 붙어져 있는 포스터와 놓여 있는 커피랑은 관련 없는 물건들. 심지어 인스타그램에서 수 없이 등장하는 대형 전신거울까지 있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갓 생겼을 때는 의도치 않은 거부감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힙하다.'라는 수식어가 붙는 예쁜 카페들은 보통 나에게는 쉴 곳이 되지 못했다. 이상하리만큼 낮은 의자와 책상, 고개를 돌리는 어느 쪽이나 사람뿐인 공간, 거기에 메뉴판 커피 이름 옆에 붙어있는..
2023.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