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1. 16:00ㆍwith_essay_rain
'가? 말아? 가? 음... 말아? 아니야 가?'
낮에는 무덥다가도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리는 초여름. 나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북한산에 갈까 말까.'
❓그게 뭔 고민이야..?
사진에 다시 취미를 붙이면서 공모전에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공모전 사이트에 있는, 일정이 맞는 모든 공모전을 정리해서 달력에 적어뒀다. 그 중 제일 앞에 있던 공모전이 바로
"2023 국립공원 사진 공모전"
사실 국립공원이라는 게 집 앞에도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경기권에는 북한산이 유일했다. 그 때부터 북한산에 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
고민을 한 이유는 특별하진 않다. 귀찮음 그리고 근거 없는 불안감.
사실 산을 등산한다는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기 어려운 것이다. 심지어 집 뒤에 있는 작은 산도 아니고 암석이 가득한 북한산을,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사진을 찍을 곳을 확인 하면서 올라간다는 것은 상상만해도 꽤 고생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을 해 놓고도 한 점도 제대로 된 결과물을 가지고 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그런 불안감이 나를 고민속에 가둬두었다.
😅할건 해
결정을 하게 된데에는 엄청난 이유가 있진 않았다. 이렇게 걱정할거면 그냥 하라는 것. 사진은 둘째로 놓더라도 아무런 의미없는 시간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이 이유였다. 어차피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도 더이상 없고, 블로그에 쓸 스토리도 없는 마당에 뭐라도 하나 만들면 또 좋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결정한 다음 날 북한산으로 출발했다.
🪨 사모바위 코스
북한산의 코스는 여러개가 있었다. 그 중 나는 사모바위 코스를 선택해서 올라갔다.
우선 사모바위 코스의 입구가 우리집에서 가는데 제일 가깝기도 했고 코스의 초입에 구기계곡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특히 계곡의 존재가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무리 사진에 많은 마음을 쏟지 않는다 하더라도 좋은 결과물을 들고 오려는 노력은 해야하지 않을까. 계곡에 모습을 담는 것은 좋은 결과물을 내기에 좋아보였다. 물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다른 코스는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자세하게 찾아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모바위 코스가 분명히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코스의 앞에 도착한 순간부터 카메라를 들고 걸었다. 코스 입구 마을까지 계곡이 흘렀는데, 계곡물의 맑음이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코스의 입구를 지나치자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등산길이 나타났다.
🎮마비노기에서 느낀 걸 여기서도 느끼네
나는 산이라고 하면 집 근처에 있는 계양산만 올라가봤다. 옛날에 마니산, 가장 최근에 지리산을 가보기는 했지만 마니산은 너무 옛날이라 기억에서 지워졌고 지리산은 차를 타고 올라갔던 거라 등산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북한산의 초입은 굉장히 새롭게 느껴졌다.
옛날에 마비노기를 한창 즐겨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 초보자 던전으로 알비던전이라는 곳이 있었다. 아무래도 초보자용 던전이기 때문에 난이도도 쉽고 지도에도 어떻게 가면되는지 방향이 다 나타나 있었다. 그렇게 알비던전을 아무렇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을 때까지 캐릭터를 키우고 간 바리던전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미니맵에 길은 안나와있고 방에도 길목에도 몬스터들이 그득했으며 방 하나를 깨고 나오는 것도 꽤나 고생스러웠기 때문이다. 북한산 입구에 서있는 내가 라비던전에 서있던 캐릭터의 마음이었다.
북한산에는 돌이든 나무든 계단으로 돼있는 길이 거의 없었다. 거의 흙으로 된 오르막길, 암석들이 겹겹히 있는 돌길이었다. 한 평생을 언덕배기 뒷산만 다니던 내가 카메라를 들고 삼각대를 메고 암석 사이를 쏘다니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 무리하지 않고 조심히 다녔다.
🚶그래도 목적은 잃지 않아
조심히 다녀야했지만 중요한 것은 공모전에 제출할 결과물이었다. 나는 촬영을 할 때면 시선이 카메라처럼 변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네모난 프레임이 생기고 표준 줌 렌즈가 장착된다. 그래서 '대충 이 곳에서 이렇게 촬영하면 대략 이런 결과물이 나오겠구나.' 란 생각을 하고 촬영을 한다. 산을 올라가는 내내 내 눈에 달린 카메라는 꺼진 적이 없다. 조심히 내가 발 딛을 곳을 확인하면서도 사진을 촬영할 포인트를 발견하면 꼭 멈춰서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이게 좋은 점도 있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아무래도 '촬영 결과물'이라는 시선으로 풍경을 바라보다보니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을 온전히 받지 못한다. 물소리, 바람소리, 계곡냄새, 그늘이 주는 시원함, 그늘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아름다움,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고즈넉함, 바위 틈을 올라가다 내려다 보는 성취감 등. 산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 아래 모두 이미지의 보조 역할이 돼버린다. 그러다보니 계속 감각이 곤두서있고 다녀오면 그냥 갔을 때보다 더 많은 피로도가 몰려온다. 게다가 등산에 올라가더라도 그 곳에서 보는 풍경이 만족감을 주기보다 그 풍경을 또 어떻게 담아야할지 생각하게 한다.
🐈그럴 때 나타나는 녀석🐈⬛
내가 이렇게 하나에 매몰돼 다른 것을 보지 못할 때 나를 정신차리게 해주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귀여운 동물이다. 놀랍게도 사모바위 코스를 왔다갔다 하면서 네 마리의 고양이를 만났다. 정확히는 고양이 세 마리, 강아지 한 마리. 그 중 고양이 두 마리는 구기삼거리 쉼터에 있었는데 사실 초입에서 그리 먼 구간도 아니고 사람들이 워낙 많이 쉬어가는 구간이니 '이 곳에도 고양이가 있네~' 하고 넘어갔는데,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는 각각 사모바위와 비봉에서 발견했다. 강아지는 덩치가 꽤 있는 리트리버였는데, 갑자기 내리막길에서 혼자 올라오더니 등산로가 아닌 방향으로 슉하고 사라졌다. 어떻게 여기까지 혼자서 올라왔는지 싶었다.
고양이 한 마리는 비봉 바위 위에 앉아있었다. 이 점이 꽤나 당황스러운게, 비봉의 코뿔소 바위까지 가는 길을 올라가는 길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는데 자그마한 고양이가 혼자서 자기 집마냥 누워 있는 것이다. 아마 사람들이 올라가는 것을 따라서 올라온 듯 했는데 어떻게 이 바위 위까지 올라왔나 싶었다. 그래도 바위에서 누워있거나 다른 바위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 사고의 걱정은 금새 사라지긴 했다.
이렇게 뜻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만남 덕분에 그 때서야 비로소 정상의 바람과 - 비록 뿌옇긴 했지만 - 풍경을 카메라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으로 담을 수 있었다.
🗳하산 그리조 제출
사실 사모바위 코스를 따라 사모바위와 비봉을 가는 건 그리 오래걸리는 코스가 아니다. 특히나 구기 삼거리에서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안내된 코스가 아닌 승가사 방면으로 올라가면 더 금방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승가사로 올라가는 길도 공식적인 길이기는 하다. 다만 나는 촬영을 하며 올라갔다 왔기에 약 4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마 그런 목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 금방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모바위 코스는 백두산의 정상을 찍는 코스가 아니기에 더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 갈 때는 마음 편하다고 해서 너무 가볍게 가지는 않을 듯 하다. 아무래도 계곡이 흐르는 곳이다 보니 미끄러운 길도 많고 경사가 가파르고 좁은 길도 많기 때문이다. 잘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 가능하다면 장갑도 챙겨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집에 와보니 마음에 드는 사진을 15장 정도 고를 수 있었다. 공모전은 10점까지 제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중 10점을 추리는 데 꽤 애를 먹었다. 그래도 잘 추리고 제출까지 완료했다. 그 후 지난 회차 수상작들을 확인했는데.... 역시 사진 실력자들은 많았다. 강렬한 색, 웅장한 모습, 찰나의 순간 등. 당연스럽게 내 사진은 분명 그 사진들과 다른 점이 있지만 그게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니 이제 입선 연락만 기다리면 될 것같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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