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7. 20:00ㆍwith_essay_rain
우리 집 난방 리모컨은 안방에 있다. 한여름에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나는, 오늘도 온수를 켜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는 작은 책상이 있었다. 이제는 많이 정리된,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 중 정리하지 않고 남겨둔 것이었다. 지금은 아버지가 이런저런 용도로 쓰시고 계신데, 책상 위에는 항상 여러 장의 종이와 그 위에 적힌 아버지의 메모가 있었다. 안방을 들어갈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종이에 적힌 메모를 보곤 했다. 오늘 종이에는
'11일, 기타 학원 등록, 140,000, 17일부터 시작, 5시.'
라고 적혀있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 어버이날을 맞이해 아버지께 무슨 선물을 드릴지, 친누나와 카톡 너머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그동안 드린 거라고는 용돈, - 생일선물이었을 - 내비게이션, 용돈 또 용돈. 이번 어버이날은 왠지 용돈만 드리고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맞는 첫 어버이날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집의 공간을 채우고 마음이 보관될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마침 아버지께서 몇 달 전에 말씀하셨다.
"클래식 기타나 배워볼까."
아버지께는 아직 낭만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내가 중학생 때 기타를 선물 받으면서 아버지께 옛날 얘기를 듣곤 했는데, 본인은 보통 악보도 없어 그냥 듣고 연습했다는 얘기였다. 그때는 가격도 비싸, 기타 넥이 움푹 파일 때까지 연주했다고 하셨다. 그런 기타를 들고 교회에서 반주도 하고 학생운동 하면서 노래도 부르셨다는 거다. 그리고서는 내 기타를 가져가 옛 기억을 더듬어 몇 가지의 코드를 잡아보시더니 "기억도 잘 안 난다." 하시고선 돌려주셨다. 아버지의 말씀을, 문득 떠오른 그 기억이랑 나란히 놓고 보니, 그때의 자신을 잇고 싶어 하신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정말 배우게 되면 기타는 내가 사겠노라 당당히 선언했다.
그 후로 기타 얘기는 꺼내지 않으셨다.
아무튼 그 기억이 떠올라 누나에게 얘기했다. 누나는 "사드렸는데 안 하시면 어쩌지?" 하고 대답했다. 안 그래도 아버지께 누나가 슬쩍 기타 얘기를 꺼냈는데,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셨다는 거 같다. 그래도 있으면 하시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저렴한 클래식 기타와 용돈 조금을 챙겨드리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어버이날 전, 낙원상가로 갔다. 사실 아는 건 없었지만 왠지 음악 관련 용품을 제대로 사려고 한다면 낙원상가로 가야 한다는 고집이 들었다. 진짜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낙원상가로 가는 전철 안에서 부랴부랴 클래식 기타의 종류를 찾아봤다. 누나와 내가 가진 예산으로 할 수 있는 기타는 가장 저렴한 기타 군에 있는 콜트의 ac100, 야마하의 c40 정도였다. 재고가 없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불안에 떨고 있으니 어느새 상가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 호구처럼 보이면 바로 덤탱이다.'
라는 오래된 편견은 속마음과는 다르게 내 등을 꼿꼿이 필 수 있게 해 주었다.
상가의 2층을 크게 돌다 보니 cort 공식 대리점이라고 적힌 곳을 발견했다. 그리고 당당히 들어가서 ac100을 찾는다고 얘기했다. 사장님께서는 "당연히 있지요." 하시면서 얼른 기타를 꺼내주셨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었기 때문에 그 후로는 내 자신이 얼마나 고장 나있었는지 모르겠다. 일단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16만 원 하는 기타의 넥을 살펴보고 소리를 감상하는 '척'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웃긴 모양새였던 거 같다.
'그래도 이왕 선물해드리는 거니까 꼼꼼히 살펴보면 좋겠지..'
실제로 처음 꺼내준 기타 상판에 얼룩이 하나 있어, 새로운 기타로 바꿔주셨다. 기타를 고르고 밖으로 나왔을 땐, 당연히 기타만 매고 나올 줄 알았는데 양손 가득히 나와버렸다.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기타 스탠드, 튜너, 거기에 보면대까지 받아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속의 날. 5월 5일이 됐다. 어버이날은 월요일이었기 때문에 공휴일인 5일이 가족 약속의 날이 된 것이다. 장소는 김포에 있는 '블루스모크'라는 바비큐를 파는 식당이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바로 옆에 마을회관이 있었다.
'아니, 행정복지센터도 아니고 마을회관이라고? 이런 엄청난 시골에 이런 식당이 있단 말이야?'
아무리 업무 차 곳곳을 다니신다지만 이런 곳을 어떻게 찾으시나 싶다.
그날은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다고 예보가 됐던 날이었다. 전날 나온 뉴스에서는 이미 호우특보가 예보돼 있다고 얘기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가려고 나왔을 때는 많이 오는 거 같지 않았다. 좋은 일을 하려니 날씨도 어느 정도는 타협을 해주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를 조수석에 모시고 식당으로 출발했다. 어린이날에다 주말이 붙어있는 연휴였지만, 이미 예보된 비 소식으로 거리에 차는 많이 없었다. 여느 부자지간과 다르지 않게 밀도 있는 침묵으로 꽉 찬 느낌을 즐기고 있으니 그 틈으로 아버지께서 먼저 말을 트셨다.
"집 근처 학원 있다 해서 상담받으러 갔는데, 사람도 없어서 그냥 와버렸다."
"학원? 무슨 학원?"
"기타~"
뭐지. 눈치를 채 버린 것일까? 기타는 누나 편에 맡겨뒀는데. 안 그래도 전 날 낙원상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아버지께 전화가 오긴 했었다. 혹시 그때 악기 소리를 들으신 걸까? 아닌데 소리는 안 났는데... 아니면 누나가 저번에 질문했던 걸로 눈치를 챈 건가? 일주일도 넘은 일을? 누나가 얘기했을 리는 없는데 뭐지?
나는 쏟아지는 생각들을 창문 밖 빗속에 던지고선 아무렇지 않게 아버지랑 대화했다.
"우리 동네에는 이제 음악학원 잘 없을걸~ 어르신들만 많아져서... 좀 나가는 거 괜찮으면 부천 쪽은 어때?"
"거기에도 학원이 있나?"
"아빠 개인교습받고 싶은 거니까, 학원 같은 거 말고도 요즘 연습실만 따로 해서 1대 1로 가르쳐주는 곳도 많아~"
침묵.
"옛날에는 안 배우고 했었는데. 코드표 보고서 연습하고 듣고서 따라 치고... 그때는 기타도 비싸서..."
당장 답을 찾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바로 결정 내리기도 어려워하시는 일이었기에 자연스레 옛날 얘기가 나왔다. 언젠가 들었던 얘기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지면 익숙한 것도 새로워지는 법이다. 그때 그 시절 기타 얘기를 듣고, 내가 기타를 배우던 얘기를 하고. 눈앞에는 블루스모크 건물이 있었다. 사실 인천에서 김포까지는 차로 40분가량이었기 때문에 잠깐 얘기를 나누면 그리 먼 거리도 아니었다.
주차를 하러 주차장에 들어가니 매형이 기타를 메고 누나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이게 맞나?'
누나는 매형을 얼른 들여보내고 나는 차를 얼른 꺾어 주차자리로 들어갔다. 별 말 없으신 게 아마 못 보신 듯했다. 아버지께서 차에서 내리시고 누나가 시선을 뺏으며 가게로 모시고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자리를 잡아둔 매형이 기타를 세워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가 말했다.
"자! 어버이날 선물! 그리고 이건 용돈!"
아버지는 이런 선물에 참 어색해하신다. 엄청 좋다는 표현은 안 하시는데 숨기지 못하는, 저 엄청 좋아하는 표정은 선물 주는 사람으로 하여금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안 그래도 아까 오면서 기타 얘기 그렇게 했는데. 무슨 일이냐."
극찬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선물의 존재를 전혀 모르시고 기타 얘기를 진짜 일상대화로 하신 거였다.
아버지께서는 돈 많이 썼겠다며 누나와 나를 걱정하시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는 빼지 않고 하셨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다. 선물을 받은 날 아버지께서는 기타를 꺼내서 한 번 잡아보시고는 거치대에 다시 올려두셨다. 그대로 먼지가 쌓이나 걱정이 돼 학원이든 개인교습이든 찾아봐야겠다 싶을 때쯤 안방에서 메모를 발견했다.
'11일, 기타 학원 등록, 140,000, 17일부터 시작, 5시.'
이미 혼자서 다 해두셨다.
사실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내가 마주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성당에 가시거나 집에 누워서 핸드폰을 하시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주로 일을 하시거나 사람을 만나러 나가 계시긴 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직접 보는 일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슬픔과 공간의 공백이 주는 마음의 공백을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항상 집에 있을 수도, 있더라도 끊임없이 말동무가 돼드릴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정도로 용기를 낼 수 있는 어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응석 부리는 아이만큼도 못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하더라도 그게 아버지와 나 사이의 어색한 장벽을 금방 허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학원에 등록하신 건 꽤나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해왔던 것을, 할 줄 아는 것을 계속하는 것도 분명 좋은 일이지만, 하고 싶었던 것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도 꽤나 긍정적인 마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연습이라는 명목으로 간간히 집을 채울 16만 원짜리 클래식 기타 소리를 상상하니 벌써부터 따뜻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아버지를 마주하고 기타를 연주할 일이 있을까. 부모님께 이렇다 할 연주를 보여드린 적이 없기에 쉽사리 상상가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엄청난 실력으로 내가 배우고 있을 수도 있겠지. 아무튼 확실한 것은 아버지와의 거리가 내 방에서 안방만큼의 거리만큼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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