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1. 19:00ㆍwith_essay_rain
집 앞에 미드테이블이라는 카페가 생긴 지 1년이 지났다. 물론 처음 가 본 건 한 달 전이었다.
처음에 생겼을 때 '우리 동네에 이런 카페가 생기다니..'라고 생각했다. 본래 동네에 있던 커피 프랜차이즈, 개인 카페들과는 다르게 성수동에서나 볼법한 카페였기 때문이다. 통유리로 된 벽에 적은 수의 테이블, 벽 곳곳에 붙어져 있는 포스터와 놓여 있는 커피랑은 관련 없는 물건들. 심지어 인스타그램에서 수 없이 등장하는 대형 전신거울까지 있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갓 생겼을 때는 의도치 않은 거부감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힙하다.'라는 수식어가 붙는 예쁜 카페들은 보통 나에게는 쉴 곳이 되지 못했다. 이상하리만큼 낮은 의자와 책상, 고개를 돌리는 어느 쪽이나 사람뿐인 공간, 거기에 메뉴판 커피 이름 옆에 붙어있는 숫자를 보면 이디야에서 아이스티에 샷추가 해서 가게 구석에 있는 소파형 의자에 파묻혀 유튜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1년 전 미드테이블도 내 27년간의 카페 빅데이터가 거부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마치 합성한 듯, 동네라는 공간에 딱 붙여놓은 것 같던 카페가 점차 동네의 모습과 융화되기 시작했다. 사실 1년이라는 시간이나 있었으니 그만큼 익숙해질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없는 손님들, 꽤나 조용하고 아늑해 보이는, 빈 공간의 실내. 한 번 정도는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한 번은 도전해볼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한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 위에 수많은 기억들이 쌓이면서 잊혀져 가던 결심이 여자친구의 동네 방문으로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내가 사는 지역에서 데이트를 하게 됐는데, 20년이나 이곳에서 산 당사자도 동네에서 놀지 않으니 아는 곳은 없고... 어디를 가면 좋겠는가...
...
"미드테이블"
그렇게 가게 오픈 1년 만에 가게 됐다.
카페는 밖에서 봤을 때보다 더 괜찮았다. 크지 않은 음악, 조용한 실내, 넓은 공간, 아늑하면서도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빈 공간들, 테라스. 그리고 밖에서는 알 수 없었던, 실내에서 보는 바깥 풍경. 혹자들은 알지도 모르겠다. 앞만 보고 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그 모습이 그렇게 새로울 수 없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항상 한 면만 바라보다가 문득 바라보는 공간을 뒤집으면 새로운 공간이 보인다. 이곳의 큰 창 너머로 보이는 것이 그러했다. 오랜 기간을 함께 했던 공간인데도 그러했다.
그래서인지 창 바로 앞에 나있는 작은 테이블에 앉았을 때 '이곳에서 글 쓰면 꽤나 금방 쓸 수 있을 거 같은 걸?' 하고 생각했다. 아마도 익숙한 곳에서 새로운 시선을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첫 방문 후로 몇 번 더 방문했다. 손에는 태블릿 하나.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정리했다. 그렇게 두 번째 산티아고 글이 나왔고 카드뉴스에 담길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본래 이런 작업을 할 때 카페에서 하는 걸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카페는 집중이 분산되기 일쑤였고 내 머릿속 소리보다 옆에 앉아있는 사람의 친구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들어보니 그 친구가 잘못한 게 맞기는 하다. 집에서도 일반적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서 하는 편이었는데, 그마저도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보니 그런 환경을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니 새로운 공간, 고즈넉한 분위기, 여유로운 환경, - 하이볼까지 파는 - 다양한 메뉴.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좋은 이곳을 발견한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처음 내 작업공간을 찾았다. 물론 진짜 내 공간은 아니지만, '집 앞에', '작업하기 좋은' 공간을 찾은 사실은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잠깐 생각하려고 버스 타고 전철 타고 비행기 타고 제주도까지 갈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이 공간에서에 나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남길 수 있을까. 지지부진했던 내 창작의 삶에 부디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남이었으면 좋겠다. 일단 일어나서 미드테이블로 가자.
* 미드테이블에서 어떠한 보상, 제안도 받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임을 밝힙니다. 그 정도의 글도 아니지만
'with_essay_ra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니를 빼다 (0) | 2023.12.14 |
---|---|
카메라, 삼각대 그리고 북한산 (6) | 2023.06.11 |
아버지께서 기타학원에 등록하셨다. (9) | 2023.05.17 |
두 번째 마중 (0) | 2023.02.12 |
엄마는 카메라 뒤에 있는 네 뒤에 있어 (0) | 2023.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