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카메라 뒤에 있는 네 뒤에 있어

2023. 2. 11. 23:20with_essay_rain

내가 20살이던 때 어머니께서 카메라를 사주셨다.

여름방학이라 집에 있던 나를 어머니께서는 안방으로 부르셨다. 내 방에서 안방까지 그 짧은 거리를 귀찮아하던 내가 생각난다. 투덜거리며 앉자 어떤 서론도 없이 적금을 모아 놓은 걸로 카메라를 사주시겠다 하셨다. 적금을 깨신다는 말에 내색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서는 즐거움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 사이에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다른 부모만큼 해주지 못한다는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차분했던 입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따뜻한 눈이었다. 이제 그만 가보라는 말에 방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카메라를 알아보고 학교에서 제일 잘 아는 선배에게 연락해 많은 정보를 얻어 무엇을 살지 결정했다.

그렇게 얻게된 캐논의 700D가 내 첫 카메라였다. 아마 내 이름으로 온 첫 택배였던 거같기도 하다. 카메라가 생기고 항상 카메라와 함께했다. 집 앞부터 학교, 약속이 있을 때도, 군대 휴가 나와서도, 전역 후 첫 운전할 때도. 내 피드 과거를 채우는 많은 사진들이 대부분 이 친구와 함께한 것들이다. 많은 곳을 다니며 많은 사진을 찍고 꿈을 키우고 욕심을 내 더 비싼 카메라를 사고. 어머니께서 사주신 한 대의 카메라는 내 20대 전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7년을 쓴 그 카메라 센서에 한 번도 어머니를 새겼던 적이 없다. 그 카메라에 새겨진 수많은 풍경, 자연, 사람, 웃음, 심지어 내 모습 사이에 어머니의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지난 번 참여한 작품에서 주인공의 아들은 사진을 좋아하고 결국 사진과에 진학한다. 그 아이에게 이모가 말하길, 왜 엄마 아빠 사진이 하나도 없냐는 것이다.
대본을 읽으면서 또 대사를 들으면서 마음이 움찔한 건 그 아들만이 아닌 것같다. 그 때 다짐하길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에 모시고 가야겠다 싶었다. 가서 좀 걷고 맛있는 거 먹다가 또 좀 쉬었다가. 사진도 찍었다가. 그 마음을 먹는데 세 달은 걸린 것같다. 그 사이에 어머니는 말씀도 하지 않고 제일 예쁜 곳으로 홀연히 가셨다.

아버지랑 나는 지리산에 갔다. 아버지 친구분께서 그 근처에 계셨고 겸사겸사 바람이나 쐬러 갔다.
아버지와 둘이 정령치에 도착했을 때 용기를 냈다. 좋은 카메라는 아니었지만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핸드폰에 남은 아버지의 모습은 카메라를 어색해하는 내 모습과 똑 닮았다.
어머니의 모습도 그리 담았더라면 그 모습에서도 나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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