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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헤쳐모여 7(The Hechyeomoyeo 7)>
전시를 했다. 뭐 개인전같이 엄청난 것을 한 건 아니고, 그룹전에 한 작품 올렸다. 물론 이것도 꽤 멋있는 일이긴 하다. 이번 전시에 올린 작품은 작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갔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순례길 2일 차.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 데 레이로 가는 길이었다. 순례길을 걸은 지 얼마 안 돼 다음 마을까지 얼마나 걸릴지 확신이 없었기에, 동트기 전부터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마을을 벗어나 산 길에 접어들 때 즈음 저 멀리서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주변은 금세 환해졌다. 그럼에도 이른 출발, 비수기 탓에 길을 걷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시골을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새벽 산은 안개가 자욱하다. 자욱한 안개로 인한 짧은 시야, 보이지 않는 사람, 내 걸음과 가방과 옷이 마찰되는 소리만 있는, 이 오르..
2024.09.30 -
아버지. 아빠의 한 쪽 귀.
한창 촬영을 하고 있을 때, 누나가 아버지께서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며 연락해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전날부터 귀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나더니 아침에는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누나는 회사를 매형에게 맡겨두고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가러 성수에서 인천까지 갔다. 그 와중에 아버지께서는 와달라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 가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셨단다. 진료를 함께 본 누나에게 얘기를 들으니 내이염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귀 안 쪽에 염증이 생긴 건데, 과로, 피로, 스트레스 등 발병 원인이 너무나 다양해 콕 집어서 '무엇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와중에 뇌까지 염증이 퍼졌을 수 있어 MRI를 찍는다고 했다. 때문에 그다음 날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저녁에 아버지께 ..
2024.09.23 -
<은의 혀>, 박지선과 윤혜숙 그리고 배우 및 스탭들.
본 글에는 '은의 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심지어 줄거리가 있음. 1. 정말 열심히 홍보해서 예매하지 않을 수 없던 연극이었다. 슥슥 밀어 올려 지나치는 것도 한두 번.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자주 나오면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예매를 하러 들어갔을 때 대부분의 일정이 매진인 상태였다. 다른 날들을 모두 훑어 겨우 한 좌석이 남아 있는 날 몇 개를 찾은 후에야 예매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율석이어서 좋은 좌석, 안 좋은 좌석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나는 극장 가장 안쪽 중간자리에 앉았다. 작지 않은 덩치로 관람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은수의 아들, 예준의 빈소에서 처음 만난 정은과 은수. 예준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후에도 은수는 빈소였던 303호의 조문을..
2024.08.31 -
한국장단음악축제 <장단유희>, 서울남산국악당
""나 이런 거 좋아하네."" 나는 장단은커녕 사물놀이, 연희, 국악 같은 전통음악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학생 때 배운 '자진모리장단'이니 '휘모리장단'이니 '중임무황태'같은 것들이 겨우겨우 떠오를 뿐이다. 어릴 때는 국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안 좋아하다 못해 무서워했던 기억이 있다. 장구와 북, 특히 꽹과리의 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 문화를 가까이할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더욱이 낯설고 재미없는 장르로 남았다. 이 장르가 재밌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연희극을 일로 접하면서였다. 한 연희극에 촬영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관람을 하게 됐는데,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재미없음'의 장벽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우스꽝스러운 표현들, 익숙한 이야기들의 조합과 더불어 ..
2024.08.30 -
<어쩌면 해피엔딩>
의 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즈음 뮤지컬 실황 촬영을 했었다.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이라는 작품이었다. 그 때 카메라를 붙들고 엉엉 울면서 촬영했다. 그 후 두 시간 분량의 실황을 편집하고 나서도 몇 번이고 다시봤다. 가끔은 차에서 노래처럼 틀어둔 날도 있었다. 은 그정도로 나에게 크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2024년 의 소식이 들려왔다. 학생극으로도 이렇게나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인데, 원작은 얼마나 대단할까 싶었다. 일정을 확인하고 가능한 날 표를 예매했다. 티켓팅의 치열함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일정이 안정적이지 않았기에 남들보다 뒤늦게 예매를 했다. 그 탓에 1층 맨 뒷자리 좌석을 잡았다. 그래도 1층인게 어디냐... 생각했다. 오랜만에 본 올리버와 클레어. 첫 넘버에서 조명이 들어오며 ..
2024.08.15 -
냉동실 얼음제거 대소동
얼려둔 초콜렛을 꺼내려 냉동실 문을 열었다. 초콜렛 봉지는 이상하리만큼 축축했고 냉동실 바닥에서부터 방바닥까지 물이 투둑투둑 떨어졌다. 낌새가 이상해 얼음통을 꺼내보니 가득했던 얼음들이 녹아 찰박거리고 있었다. 허겁지겁 다른 것들도 꺼냈다. 얼음틀 속 얼음들은 얼기 전 모양과 같았고 냉동식품들은 흐물거렸다. 냉장고 선이 뽑혀있던 건 아니었다. 냉장고의 상태는 아주 멀쩡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냉동실을 비우니 드러났다. 냉동실의 모든 벽이 성에와 얼음으로 도배돼 있었다. 안그래도 작은 냉동실이었는데, 두꺼운 얼음층이 냉동실을 더 작게 만들었다. 아무튼 벽을 막은 얼음들이 냉동효과를 현저히 떨어뜨렸음엔 틀림 없었다. 나는 냉장고 앞에 마른 걸레를 가득 깔아둔 채 헤어드라이어와 주걱을 들고 비장하게 냉동실을 마..
202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