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4. 21:27ㆍwith_essay_rain
사랑니가 세상에 나온 건 몇 년 전 일이었다. 매년 치과에 스케일링을 받으러 갈 때면 "이 사랑니는 대학병원 가서 빼셔야 해요."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거 꼭 빼야 할까요?"라고 물었고 또 그때마다 선생님은 "당장 불편하지 않으시면 괜찮으세요."라고 답해주셨다. 그 대답 덕에 소문으로 무성한 '사랑니의 고통'을 피해 몇 년을 뽑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방치하니 사랑니는 점점 더 고개를 내밀었고 그 사이에 음식물이 끼는 경우도 잦아졌다. 사랑니가 많이 나왔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괜스레 사랑니 때문에 다른 치아들도 밀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일주일전 강렬하게 들었다. 그날은 오전부터 기분 나쁜 편두통이 있었고 그 위치에서 선이라도 긋듯 왼쪽 사랑니부근까지 이어져 욱신거렸다. 사랑니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어금니가 "진짜 나 버리고 사랑니랑 살 거야?" 하고 묻고 있었다. 그날 바로 치과를 예약했다. 대학병원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글을 보고 집 근처 사랑니 뽑는다는 치과에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날, 빠른 시간으로 예약을 잡았다.
생각보다 덤덤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니 어느 덧 사랑니를 뽑는 날이 됐다. 병원에 갔을 때에도 막힘없었다. 오픈 시간에 맞춰 예약한 덕에 모든 것이 순순히 진행된 것이다. 엑스레이와 CT를 찍은 후 치과 의자에 누웠다.
그 때부터 겁이 나기 시작했다. 눈앞에는 내 치아 엑스레이가 켜져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양 옆 두 개의 사랑니가 아랫니들을 가운데로 밀고 있었다. 덕분에 치아들이 전반적으로 휘어져 보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윗니에는 사랑니가 없었다는 점이다. 나는 당장 간호사에게 양 쪽 두 개의 사랑니를 모두 뽑을 것을 제안했지만, 한쪽씩만 할 수 있다는 친절한 대답에 말을 쏙 삼켜버렸다.
잠깐 누워있으니 간호사분이 서류를 들고와 서명을 하고 뽑는 쪽 치아들을 스케일링해주었다. 이왕이면 반대쪽도 좀 해주지라고 생각할 때 선생님이 오셔서 마취 시작을 선언했다! 사실 이 부분이 내가 사랑니 빼는 걸 미루고 미룬 이유였다. 사랑니 빼는 거야 느낌도 안 날 테지만 그전에 마취하는 게 무척이나 고통스럽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이 다가오니 나는 뭐라도 붙잡아야겠다 싶었나 보다 어느새 내시처럼 양 소매에 손을 집어넣고 팔뚝을 뜯어질 것처럼 부여잡고 있었다. 바늘이 들어가기 전 여느 의사 선생님들이 그렇듯 "따끔해요~ 따끔~"이라는 말과 함께 바늘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다른 주사 맞을 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통증이었고 되려 헌혈 바늘보다도 한참 아프지 않았다. 약물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고 조금씩 감각이 없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때 "많이 추우세요?" 하고 간호사분께서 말씀하셨다. 알고 보니 여전히 소매에 손을 집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손을 빼지는 않았지만 괜찮다는 뉘앙스의 표현을 했다.
마취가 다 됐을 때 선생님께서 확인을 하고 드디어 본 게임이 시작됐다. 내 얼굴에는 구멍뚫린 천이 덮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내 머리 위에서 '윙~' 거리며 작동됐다. 내 상상 속에서는 전기톱이 그려졌다. 그 물건이 입 안으로 들어와 사랑니가 난 쪽을 헤집었다. 뭔가가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마치 전기 파리채에 모기가 구워지는 냄새와 비슷했다. 소리가 멈추고 알 수 없는 물건을 입에 넣더니 무언가를 밀어내는 것 같기도 잡아당기는 것 같기도 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전기톱, 당기기, 전기톱, 당기기... 그 두 개가 계속 번갈아가며 내 사랑니를 부수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는 사랑니를 꽉 붙잡고 당겨 빼내는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이제 치아가 부러지는 소리 들리실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내 뚝뚝, 손톱 깎는 소리 비슷한 것이 들려왔다. 그때부터는 전기톱, 당기기, 부러뜨리기가 반복됐다.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이 꽤 고전하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고개는 점점 힘을 주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선생님의 힘도 아까보다는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약간은 숨찬 목소리로 "치아가 단단하시네요.."라고 얘기했다. 순간 기분이 좋았지만 문제가 없을지 걱정되는 마음도 함께 찾아왔다. 곧 선생님이 알 수 없는 장비를 빼내셨고 "다 뺐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후로는 지혈제를 안에 넣고 잇몸을 꿰맸다.
수술이 다 끝나고 밖에 나와 결제를 했다. 설명들을 듣는데 지혈을 위해 꽉 문 입과 한창 자고 있는 왼쪽 턱 덕분에 대답을 제대로 하기가 힘들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다 듣고 나가려는데 접수 받아주시는 분께서 "괜찮으셨어요?" 하고 묻길래 멋쩍은 웃음을 남기고 나왔다.
그 날 집 가는 길에 마취된 느낌이 이상하기도 신기하기도 해서 계속 만지작거리며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조금씩 마취가 풀리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막 아픈 건 아니었지만 괜히 신경 쓰이게 만드는 고통이었다. 저녁을 먹을 때도 입 벌리는 것부터 쉽지 않은데 수술 안 한 쪽으로 밥을 먹느라 꽤 고생고생하며 먹었다. 그래도 처방해 준 약을 먹으니 통증은 없다시피 가라앉았다. 이제 남은 건 다음 주에 남은 실밥 제거뿐인데 제발 이건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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