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5. 14:31ㆍ문화에서 마음 잡기
<어쩌면 해피엔딩> <하데스타운>의 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즈음 뮤지컬 실황 촬영을 했었다.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어쩌면 해피엔딩>이라는 작품이었다. 그 때 카메라를 붙들고 엉엉 울면서 촬영했다. 그 후 두 시간 분량의 실황을 편집하고 나서도 몇 번이고 다시봤다. 가끔은 차에서 노래처럼 틀어둔 날도 있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그정도로 나에게 크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2024년 <어쩌면 해피엔딩>의 소식이 들려왔다. 학생극으로도 이렇게나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인데, 원작은 얼마나 대단할까 싶었다. 일정을 확인하고 가능한 날 표를 예매했다. 티켓팅의 치열함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일정이 안정적이지 않았기에 남들보다 뒤늦게 예매를 했다. 그 탓에 1층 맨 뒷자리 좌석을 잡았다. 그래도 1층인게 어디냐... 생각했다.
오랜만에 본 올리버와 클레어. 첫 넘버에서 조명이 들어오며 올리버가 보일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웃음이 나왔다. '잘 있었구나 올리버'라는 생각, 다행이라는 마음과 함께 울컥하면서도 행복한 웃음이었다. 그 후로도 클레어의 첫 등장과 올리버-클레어가 만들어가는 모든 씬에서 나는 계속 웃음을 머금은 채로 관람했다.
확실히 학생극과는 달랐다. 명확한 사운드, 꽉 차는 미술 등 기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서라도 표현면에서 부드러움이 있었다. 학생극에서 봤던 특징되는 대사, 행동 등을 원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령 학생극에서 특정 대사를 반복해서 말했다면 본 극에서 그런 대사가 아예 없거나 그저 지나가는 정도로 처리됐다. 실황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본 나한테 '어?'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 무던함이 자연스레 다시 작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극이 후반으로 갈 수록 눈이 붉어졌다. 그리고 결국 울어버리고 말았다. 만남의 행복과 더 나음을 위한 헤어짐, 이들이 받는 상처와 서로에게 기댐으로 받는 치유를 보면 울지 않을 수가 없다. 극 후반부에 둘은 결국 기억을 지운다. 그리고 다시 첫 장면이 반복된다. 넘버 '우린 왜 사랑했을까'가 나오며 올리버가 하루를 시작하고 클레어가 이웃집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이번에 클레어가 올리버 집 문을 두드렸을 때, 올리버의 반응은 초반과는 달랐다. 지난 기억을 지니고 있던 올리버는 선뜻 클레어를 맞이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헬퍼봇 6'의 충전기를 내어주었다. 이내 클레어가 "괜찮을까요?" 묻자 "어쩌면요."하고 올리버는 대답했다.
순간 얼마전에 본 '하데스타운'이 떠올랐다. 하데스타운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만남과 헤어짐을 보여주는데, 마지막 오르페우스의 흔들림으로 에우리디케와 헤어진 후 다시 첫 장면이 반복된다. 이들의 반복되는 이야기. 그렇지만 전보다는 좀 더 나아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구성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넘버 'Road to hell' 에서 나오는 "중요한 것은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 이번에는 다를것이라 믿는 것."이라는 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어쩌면 해피엔딩' 또한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기억을 지우고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 반드시 괜찮을 것이라 확신은 못하지만 어쩌면 괜찮을 수도 있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한 마음이 내재돼 있는 것. 그들의 이갸기는 다시 시작되지만 어쩌면 이전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 때문에 극이 시작될 때 울컥했던 것같다.
나는 같은 극을 여러 번 보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면 해피엔딩'은 올라올 때마다 보러 갈 듯하다. 반복되는 얘기겠지만 더 행복해졌을지도 모르는 이 헬퍼봇들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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