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 : 시적 해상도

2023. 12. 15. 20:00문화에서 마음 잡기

 오랜만에 전시라는 것을 보고 왔다. 근래 무척이나 바빠져서 인생의 중심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다. 원래는 사진전을 가려고 했지만 가려했던 전시는 이미 종료됐었고 다음으로 눈에 들어왔던 전시가 'LUX : 시적 해상도'였다. 

 이 전시가 눈에 들어왔던 이유중에 제목의 역할이 가장 컸다. 

 'LUX : 시적 해상도' 

 LUX는 거리에 따른 밝기의 정도를 표현하는 단위로, 조명기를 선택할 때 확인하는 것들 중 하나다. 영상을 볼 때 밝기, 그러니까 빛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이 없다. 빛을 통해 보이는 피사체에는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특별히 이상하지 않은 이상 빛(밝기)은 무의식에서 처리되기 마련이다. 

 해상도는 4K, 2K, FHD 등으로 표현되는 가로, 세로의 픽셀 수를 의미한다. 유튜브 등 일상에서 영상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이 익숙해진 말이다. 

 내가 사진을 찍을 때부터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빛으로 그린다.' 내가 만들어낸 말은 아니고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했을 법한, 그래서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기술적으로도 분명한 표현이다. 카메라 내 센서(필름)에 빛이 닿으면서 그 위에 기록되는 잔상들이 사진이고 영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제목을 본 후 나는 정말 기대되는 전시라고 생각했다. 관객과 작품의 접점이자 모든 영상 콘텐츠의 근본인 빛(LUX)을 큰 제목으로 두고 부제에 영상의 형태인 '해상도'를 함축적이고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장르인 '시'와 접목해 표현함으로써 전시의 특징을 정말 잘 드러냈다고 느꼈다. 

 지금부터 전시를 다녀온 후 즐겁게 감상한 몇 가지 작품에 대해 남겨보고자 한다.



 첫 번째 작품 : Unicolor _ Carsten Nicolai 

 

이 화면에서는 어떤 소리가 날까



 첫 번째 작품을 보러 들어갔을 때 느낀건 눈과 귀를 찌르는 듯한 감각이었다. 눈앞에는 강렬한 원색의 빛이 일자로 길게 있었고 그에 따른 날카로운 소리가 공간을 웅웅대며 울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에야 그 공간의 것들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화면의 색은 계속 변하고 있었다.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각 색들이 층층이 섞여있기도 했고 흰색과 검정색으로만 이루어져 있기도 했으며 때로는 줄무늬 모양을 하고 있기도 했다. 색이 변할 때는 책장에 책처럼 색으로 채워진 사각형들이 나열돼 있었고 그중에서 하나가 뽑아져 나오면 그 사각형이 스크린 전체를 채웠다. 스크린은 양옆으로 긴 형태였는데, 특이했던 점은 양끝이 거울로 돼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공간을 어떤 색 혹은 색들이 채우면 그에 따라 소리도 변화했다. 어떤 건 노이즈 같은 자글자글한 소리가 나왔고 어떤 건 '삐-' 하는 고주파의 소리가 나왔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양 끝에 있던 거울이었다. 거울을 통해 스크린을 확장한 것인데, 소리와 색들이 무한히 이어질 것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것들을 끝없이 접할 수도, 내가 접했던 모든 것에 되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공간을 채운다는 면에서도 좋았다. 각 색 또는 색들의 조합에 따른 소리가 나오는데 공간이 그 색들로 가득 차게 되니 그 색이 가진 세상에 온전히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그 느낌을 주기 위해 비용이 많이 드는 스크린을 길게 설치하는 것이 아닌 거울이라는 간단한 생각으로 해결했다는 것 또한 좋았다고 느꼈다. 더군다나 관객이 선 위치에 따라서 더 길어지기도 더 짧아지기도 하니 경제적이면서도 관객 시선에서 효과적인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스크린이 좋았을 수 있던 이유에는 소리의 영향을 뺄 수가 없다. 위에서 말한대로 각 색 혹은 색들의 조합에 따른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러다 보니 시각적으로는 색으로 가득 찬 공간, 청각적으로는 소리로 가득 찬 공간에 있어 온몸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소리도 계속 변화해서 '저 색 조합에서는 무슨 소리가 날까?' 하는 궁금증을 만들어 내기도 해 결국 처음 봤던 색을 다시 볼 때까지 작품을 보고 있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색이 주는 연상되는 이미지와 소리의 조화 덕분이기도 하다. 초록빛과 푸른빛이 나올 때는 기계음마저도 자연 속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렸다. 붉은 계열에서는 다소 공격적인 소리가 들렸고 완전한 백색이 됐을 때 고요함이 그 공간을 채웠다. 


 두 번째 작품 : Shanshui by AI _ Cao yuxi 

 

병풍같기도 한..



 실제 회화를 감상하는 것과 스크린 너머로 감상하는 것은 받는 느낌부터 다르다. 실제 회화를 감상할 때는 사용한 캔버스, 재료들의 질감들과 터치의 섬세함 등이 감각적으로 전달되는 느낌을 받는다. 반대로 스크린을 통해 전달받는 것은 평평하고 차가운, 밋밋한 느낌뿐이다. 즉, 회화가 주는 느낌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다. 

 이 작품에서는 그런 스크린의 불완전함을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느껴졌다. 수채화(수묵화?)를 점묘화처럼 점으로 표현하고 그 점들이 흐른다. 마치 바다의 물고기들이 군집을 이루며 다니는 모양새와 비슷한데, 그 흐름들이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의 움직임이 방향과 질감을 만들어낸다.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모양을 드러내는 데 가장 탁월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딘가에 딱 붙은 채 아무런 움직임도 있지 않으면 그 것은 배경에 동화돼 버린다. 우리가 눈에 띄지 말아야 할 때 가만히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점에서 계속해서 움직이는 이 점들, 그 이상의 집단은 움직임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생김새를 보여주면서 질감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느꼈다.


 세 번째 작품 : Winter landscape _ Pipilotti Rist 

 

각기 다른 부분에 영사되는 영상



 처음 들어갔을 때 보인 건 회화를 감상할 때와 비슷한 느낌의 구조였다. 작품이 벽에 걸려져있었고 그 앞에는 접근하지 말라는 낮은 펜스가 쳐져 있었다. 관람객들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 듯 그 앞에 서서 작품을 쳐다보고 있었다. 

 벽에 걸린 회화에서는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부분부분 영상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무 부분에서만 영상이 흐르기도 했고 하늘 부분에서만 영상이 흐르기도 했다. 

 이 작품에 가장 좋았던 것은 회화의 프레임을 빛을 반사시켜주는 스크린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회화와 영상의 조화를 통해 그려진 그림에 깊이감을 더하고 있었다. 영상에서는 회화를 보고서 연상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듯했다. 회화는 겨울의 모습을 담고 있으니, 그 안에 영상으로 겨울이나 겨울 너머를 그려주면서 마치 각 부분의 피사체들이 기억을 꺼내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나 영상이라는 빛을 쏘다 보니 자연스레 입체적인 회화 재료들 겉으로 그림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 모습이 회화 속 피사체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듯했다. 

  또한 일반 스크린이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 그려진 회화 위에 영상을 투사하는 것이다 보니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채도나 광도 면에서 강렬하게 표현한 듯했다. 일반적으로 영상은 흰색 벽에 반사시켜서 보여주기 마련인데 회화는 아무래도 그럴 수 없으니 영상과 회화를 나란히 잘 보여주기 위한 선택으로 보였다.



 네 번째 작품 : Artifical Botany _ Fuse 



 관람객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작품들이 둥글게 걸려 있었다. 작품 속에는 숲 속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자연의 모양들이 스쳐가 듯 지나가고 있었다. '스쳐가 듯 '이라고 표현한 것은 각 작품의 모습이 고정돼 있지 않고 계속해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에서 찬찬히 둘러보다보면 빠르게 흘러가는 자연의 시간과 변화를 관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각 작품 상단에 붙어있는 스피커에서 영상에 맞춘 소리들이 나오고 각 스피커마다 다르게 나오는데, 서로 다른 소리들의 합이 꽤나 조화롭게 들려왔다. 아마도 비슷한 결로 이루어진 피사체들과 그에 따른 소리를 사용했기 때문 아닐까 싶었다.



 다섯 번째 작품 : 기억색 _ 박제성 



 커다란 스크린 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타임랩스처럼 지나갔다. 그려지는 그림들에는 어떤 형체가 뚜렷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다 그려지기 전에 멈추거나 알 수 없는 모양이 되거나 뒤틀려 있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어떤 것들은 뚜렷한 색상을 띄기도 했다. 그림들은 선명한 선이었다가 이내 사라지기도 했다. 또 그 그림들을 그리는 펜의 모양도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다. 

 이 작품은 마치 기억을 시각화 한 모습처럼 느껴졌다. 선명해졌다가도 흐릿해지는 기억의 파편들과 그 흐릿한 기억들이 합쳐지기도 쌓이기도 하는 모습같았다. 뚜렷한 색의 표현은 기억 속 강렬한 인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림들이 다른 모양이거나 상식적이지 않은 모습이어도 기억에서 발현한 모습이라는 기준이라면 조화로워 보였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머릿속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딱 이 작품과 같을 것이다. 


 여섯 번째 작품 : Core _ Adrien M & Claire B 

 

카메라로 담기엔 진짜 어둡다


 이 작품은 네 면을 모두 스크린으로 사용한 작품이다. 그래서 들어가자마자 관객들을 감싸며 자신들의 세계에 초대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작품은 마치 비쥬얼라이저를 보는 것 같았다. 소리에 맞춰 점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작품을 전부 감상했을 때, 그들의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 번은 그 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듯했고 그 점들과 함께 유영할 때는 그것들이 가진 흐름에 함께 탑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 그 흐름에서 나왔을 땐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 같은, 마치 토성의 고리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괜스레 편안한 마음이 들었는가 싶다. 


 일곱 번째 작품 : Black corporeal _ Julianknxx 

 



 초상화를 그린 듯한 스크린이 좌우로 늘어서 있고 가운데에는 큰 스크린 속 교회 내부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종교적인 옷을 입고있었는데, 특이하게 모두 고글을 쓰고 있었다. '숨'이라는 부제가 있었는데 그 모습이라도 잘 보여주려는 듯 영상 속에는 연기가 흐르고 있었다. 

 '숨'이라고 말했을 때 연상할 수 있는 것들을 프레임안에 담은 듯하다. 숨은 호흡이고 호흡은 공기의 흐름이다. 그런 점에서 연기의 흐름, 빛의 굴절, 노랫소리의 전달, 바람(공기의 흐름)의 차단을 위한 고글 등을 사용한 것이 보이지 않는 숨에 대한 가장 시각적인 표현이지 않았나 싶다. 


 아홉 번째 작품 : Sanctuary of the Unseen Forest _ Marshmallow Laser Feast 



 나무 외관의 모습과 내부 흐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외부에는 공기의 흐름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표현이 있었고 내부에는 생체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흐름으로 만들어진 형태는 마치 인간의 근육을 연상케했다. 흐름의 줄기들이 서로 엮여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부의 색도 붉은색을 사용해서였을 수도 있다.

 

-----

 

 여러모로 즐거운 전시였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영상물에 창작물의 표현성을 충분히 더한 전시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름답거나 신기해서만이 아닌 그 안에 만든 사람들이 생각한 가치가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전시 전에 정보를 따로 찾고 가지 않는 나로서 창작자들이 말하고자 한 가치가 충분히 전달됐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순간을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를 다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눈이 쉴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계속해서 빛을 내는 화면을 보는데, 전시 특성상 밝을 수가 없다보니 눈이 금새 피로해진다. 작품의 연달은 감상이 하나의 경험을 주기에 그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눈이 피곤한건 피곤한거니 만일 안구건조증이 있다거나 눈이 금새 피로해지는 사람들은 인공눈물을 잊지말고 챙겨가는 것이 좋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