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 15:00ㆍ문화에서 마음 잡기/책에서 잡기!

어디서 살 것인가!
제목만 보면 부동산 공부를 위해 읽는 책 같다.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하는가! 라던지 안전하게 투자하는 법!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책 제목만 보고 지나갔더라면 이 책을 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밑에 저자 유현준을 보고 이 책을 골랐다.
글로 읽는 셜록현준
'셜록현준'은 이 책의 저자이자 건축가 유현준의 유튜브 채널명이다. 건축에 인문학을 더한 콘텐츠를 보여주는 이 채널을 항상 챙겨보는데, 이 책은 마치 그 유튜브 콘텐츠를 글로 옮긴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말은 유튜브에도 있는 내용이 책애도 있다는 뜻이 아니라, 책에서 유현준 교수의 목소리와 표정, 손동작, 꼬고 있는 다리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이건.. 유현준이네...' 하고 가장 도드라지게 보이는 점은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부분이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유현준 교수는 본인의 주장이 강하고 명확하다. 확실한 본인의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은 좋다고, 싫어하는 것은 싫다고 말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물론 '말할 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주장이 정설이고 반드시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생각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분명히 피력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들어난다. 책은 여러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장의 초중반에는 어떤 주제를 다룰지, 어떤 건물에 대해 얘기할지 소개하고 쭉 설명을 이어간다. 그러다 본인이 추구하는 의견을 후반부에서 얘기한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라는 이름의 첫 장이다.
초중반부에 우리나라 학교의 건축으로써의 특징과 저자의 과거, 학생들이 학교를 사용하는 법 등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러다가 새로운 학교를 건설하는데 교육부 관계자들과 있었던 얘기를 시작한다. 저자가 당시에 어떤 감정이었을지, 글을 쓰면서는 또 어떤 마음으로 썼을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한 독자의 눈으로 봤을 때 그러데이션으로 분노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듭시다!"라고 주장하다가 "그러면 안 되지!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사회를 위해서!" 라며 조금 일그러진 표정으로 목소리를 키워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불편하다 거나 자기주장이 너무 쎄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되려 대화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유현준 교수의 의견의 끝에는 항상 내 생각을 덧붙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 '~라고 생각한다.' , '~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말로 문장이 끝나서 일 수 있다. 또한 저자 본인의 독서 방식이 책과 대화하는 방식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셜록현준 콘텐츠 중 <아직도 책을 꼭 사서 읽는 이유? 유현준만의 독서 방법>이라는 영상을 보면 '독서는 저자와의 대담'이라고 표현하거나 본인의 독서법을 설명하면서 책 한편에 저자의 의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는다고 얘기한다. 그런 본인의 독서법의 결과로 이런 책 구성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나는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내 생각을 적어가면서 작가와 토론을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강의를 듣는 학생처럼 '아 그렇구나. 저런 생각까지 확장될 수 있구나.'에 그쳤다. 이는 아마 내가 그 방법이 익숙하지 않아 내 생각을 만들고 확장하는게 당장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비록 비판적으로 읽기, 적극적으로 읽기는 못했다 하더라도, 분명 일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건물과 도시의 구성을 보며 내 생각을 확장하고 내 의견을 만들며, 약간의 건축 관련 시선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건축의 인문학!
위에서 말했듯이 책의 제목으로 예상되는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를 책에서는 다루고 있다. 바로 건축이라는 요소에 인문학을 접목시킨 것이다. 만약 저자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책을 집어든다면, 투자나 부동산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건물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조명은 어떤 상황에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지 등의 내용을 기대할 수도 있다. 비록 그런 기대를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내용은 아니지만, 우리가 인간이라면, 사회구성원이라면, 잘 갖춰진 현대의 인프라 속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내가 기대하지 않은 부분에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책이다.
건축의 내용을 우리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데 재미없을 수가 있을까. 과거 공공의 공간이던 골목길이 현대에 와서 자동차에게 점령당하고, 지금은 자동차가 올 수 없는, 좁은 골목과 계단이 있는 이화동, 경리단길로 피신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건축적으로 풀어내는데 그것이 어떻게 재미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건 단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은 아닌 듯하다. 이 책을 통해 도시 속에, 건물 속에 살고 있는 우리네 사람들이 스스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과정 중에서 건축을 단순히 건물이 아닌 그 이상으로 보고, 가치관을 만들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듯하다.
마치 책 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p.373
앞으로는 시에서 공원을 만든다면 어디에 들어서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아파트가 재개발될 때 대형 상가가 들어오는 게 좋은지, 아니면 연도형 가게가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게 좋은지 생각해 보고 주민 회의에서 의견을 내야 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이 살 곳을 더 화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를 화목하게 만드는 도시를 함께 만들어 보자.
남기고 싶은 글
p.55
실험에 의하면 3미터 이상의 높은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 키보다 위로 기능 없이 비어 있는 공간이 우리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모든 공간에 각각 어떤 기능이 주어지면 우리에게 생각할 여유가 없어진다.
p.56
마당이 주는 자연의 변화가 내 해석이 필요한 요리하기 전의 재료라면 tv속 이야기는 가공식품과도 같다.
...
지금 우리의 주거 공간은 인스턴트 식품같다.
p.60
아이들은 '시간'만 있으면 '공간'을 찾아서 '장소'로 만든다.
p.92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공간을 즐기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
뉴요커들의 삶은 자신들이 세 들어 사는 작은 방에 갇혀 있지 않다. 그들은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재미난 공간들을 거의 무료로 즐기면서 살 수 있다.
p.108
지금 생각해 보면 야간 자율 학습실은 청소년기에 공식적으로 부모를 떠나 있을 수 있게 해 준 우리들만의 거실이었다.
p.120
사람이 어떤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이 들려면 거리의 '이벤트 밀도'가 높아야 한다. 이벤트 밀도란 1백 미터를 걸어가면서 내가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는 가게 입구의 숫자다.
p.218
높은 곳은 권력을 창출한다. 높은 곳을 만든 다음에 그 곳에 가게 해주는 건축 장치는 계단이다. 그리고 그 계단을 장악하는 사람은 권력자다. 지구라트를 지은 사람들은 계단을 통해 권력을 창출하고 그 권력을 통해 나라를 통치하는 힘을 만들어낸 것이다. 계단은 이처럼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장치다.
p.222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계단이 있는 곳은 사람이 보호받는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계단이 많은 이화동, 경리단길 등으로 사람이 모이고 있다.
p.222
건축가 지오폰티는 계단은 두 개의 다른 공간을 연결해 주는 멋진 건축 요소라고 말했다. 계단을 올라가면 걷기만 할 뿐인데 우리의 키가 자라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반대로 내려갈 때는 줄어드는 체험도 하게 된다. 계단 위에서는 우리의 눈 높이가 계속 바뀌는데 눈 높이의 변화는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 속 주인공 키팅 선생님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가라고 요청한다. 작지만 수십센티미터 커지는 그 시점의 변화가 엄청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다. 일상에서 그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계단이다. 어린아이들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데, 어쩌면 키가 작은 아이가 어른보다 커지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계단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p.235
(철강, 석유 전기 회사의 발전 이야기에 이어서)
인터넷의 발달로 경제구조가 바뀌는 지금도 석유, 자동차, 대형 유통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친다. 몇몇은 도태되고 몇몇은 진화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향후 수십년 간 우리 도시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혹 여러분의 회사가 속한 사업이 사양산업인가? 그렇다면 철강회사가 건축 자재 시장을 개척했던 것처럼 우리 환경을 바꿀 기회를 가졌다고 보면된다.
p.247 - 249
한옥의 형태는 형이상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필연적인 이유로 나온 디자인이다. 우선 농경사회에서는 수확한 벼를 탈곡하고 각종 작업을 할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가운데 마당을 두고 주변으로 집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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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대들보 정도만 제일 큰 나무를 사용했고 엄청 고생해서 지붕 높이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전통 건축을 지을 때 대들보를 올리는 상량식을 대단하게 기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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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나무는 물에 젖으면 썩는다 우리 전통 건축의 디자인은 나무를 물에 젖지 않게 하는데서 시작된다. 우선 나무 기둥은 하부가 물에 잠겨서 썩지 않게 주춧돌 위에 세웠다. 땅이 습하니 마루는 땅에서 들린 높이에 만들었다. 나무 기둥이 비에 젖어서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서까래를 길게 뽑아서 처마를 만들었다. 지붕의 코너 부분의 처마는 대각선상에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처마보다 더 길어진다. 이 코너 부분을 '추녀'라고 한다. 처마의 길이가 길다보니 그림자는 더 깊게 드리워진다. 그런 이유에서 코너 부분을 받치는 나무기둥이 물에 젖으면 그늘에서 마르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처마를 들어올리는 디자인을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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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디자인은 문제 해결의 결과물이다.
p.255 - 257
공산품은 대량생산 되었다. 공장에서 양산된 물건들은 팔려야 했다. 그래서 생성된 건축 장치가 '쇼윈도'다. 이 당시에는 자동차가 보급되어 도로의 중앙은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가 차지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느린 ... 사람들은 건물 옆으로 밀려났다. 밀려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도'가 생겨났다.
...
사람들은 건물에 가깝게 붙은 인도 위를 줄지어 걷기 시작했고 상점들은 인도 위를 걷는 사람들에게 가게 안의 건물을 잘 보여주기 위해 1층 벽면을 최대한 투명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유리창을 크게 키운 쇼윈도다.
p.265
최근들어 두 개의 큰 건물이 철거되는 것을 보았다. 서울 강남의 르네상스 호텔과 한전 사옥이다. 강남이 개발된지 40년이 되었으니 이 건물들도 기껏해야 30여년 정도의 역사를 가졌다. 서초구와 강남구의 재건축 아파트 단지도 속속 부서지고 있는 중이다. 성형외과로 치자면 서른 넘어 생긴 주름살을 펴서 없애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은 항상 20대 동안으로 살고 싶은 모양이다.
p.269
뉴욕에 가면 '첼시마켓'이라는 명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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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원래 과자 공장이었는데, 벽돌과 돌로 지어져서 수백년은 갈 듯 했다. 그런데 뉴욕시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위주로 바뀌면서 과자 공장이 문을 닫게 되었고 이 건물은 버려졌다.
...
그러다가 어느 건축가가 이 건물을 바꾸겠다는 꿈을 가지고 버려진 건물을 리모델링 하고 그 안에 와인가게를 냈다. 이후 빈 공장에 가게가 한 두개씩 들어서면서 공장은 쇼핑이 되었고 사람이 모이면서 주변의 동네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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