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7. 00:18ㆍ문화에서 마음 잡기/책에서 잡기!
대신 나는 내 방식대로 아버지를 기억한다. 나는 글을 쓴다. 망자가 내게 남긴 것들에 대하여. 물론 아버지는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p.64

■ 삶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
작가들은 일상에서 어떤 상황이나 단어를 잡아내는 데 탁월한 것 같다. 마치 삶이라는 큰 바다 위 배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낚는데, 그 망이 크고 촘촘해 갖가지 물고기들이 잡혀 올라오는 모양이다. 띄엄띄엄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약 세 달 정도 된 내가 일기에 차마 쓸 일이 없어 '별 거 없는 하루였구먼.' 하고 생각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단 한 번의 삶'에서 작가는 자신이 살아왔던 삶 속의 몇몇 사건들을 나열하며 그 안에서 생각하고 알게 된 것들을 얘기한다. 나열된 사건들을 이해하는 게 처음엔 헷갈린다. 마치 말 꼬리를 잡 듯, 한 사건의 끝 말에서 다른 사건이 떠올라 그 얘기로 넘어가는 것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책을 덮고 나서 단 한 번의, 단 하나의 삶을 완성한다. 마치 우리가 모든 일들을 딱딱 끊어서 하지 않고 이것도 했다 저것도 했다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한 권의 책 속에서 작가는 어떤 삶을 살다가 자연스레 다른 형태의 삶을 살고 그 삶들이 모여 하나의 삶을 완성시킨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왜 남기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계몽을 시키거나 자신의 철학을 전달하기 위해서일까? 스페인 순례길에는 곳곳에 비석이 나있다. 순례자들이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순례길에서 길을 잃어 당혹스러울 때마다 그 비석이 불쑥 나타나 길을 알려줬다. 그 비석은 '내가 잘 나아가고 있구나.', '비석이 없는 길들도 잘 걸어왔구나.' 하는 확신과 안정감을 줬다. 때로 그 비석 위에 순례자들이 신던 신발이 올려져있기도 했다. 그 신발은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거쳐갔음을 보여주는 징표이자 다른 시간 속 같은 공간에서 주는 응원, 그러니까 비대면의 유대였다. 책을 통해 삶을 남기는 것과 그 흔적을 들춰보는 일은 순례길의 비석을 보는 것과 같다. 작가의 인생이 독자에게 던져지면 이 사람의 경험과 감정, 깨달음을 보며 '나도 그랬지.', '이렇게도 살아가고 생각할 수 있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구나.' 같은 식의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신의 삶을 내 세계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며 고통이 가득한 인생의 길을 걷는 우리들이 서로에게 응원을 건네고 확신과 용기와 안정을 심어주는 것. 활자와 여백으로 전하는 비대면의 유대다.
내가 쓰는 글, 찍는 사진과 만드는 영상도 그렇다. 옛날에야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유튜브를 시작할 때 내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하나의 촉진제, 발사대, 오피니언 리더. 뭐 그 정도 역할을 하길 바랐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내 그물을 펼쳐놓고 하고 싶은 얘기가 걸려들길 늘 기다린다. 그 이야기가 잡히면 잘 다듬어서 어울리는 방식으로. 글이나 사진이나 영상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물론 내 채널들은 시골 포장마차 거리의 노포 같아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못한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한 명이라도 맛있게 먹고 가면 목적은 충분히 이룬 것이다.
이 책의 독후감을 핑계로 여기서도 내 삶을 남겨보고자 한다. 그게 이 책을 읽고 나서 깨달은, 더 공고해진 생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말한 대로 나는 생애에 걸쳐 삶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이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31년 삶의 개요, 요약 정도가 될 듯 하지만
"남기자 살아있는 동안에 흔적"
■ 10년의 주제
최근에 알게 된 것인데 어쩌면 나는 10년을 단위로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것 같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던 기초교육의 미성년 시절을 지나 재작년까지 보냈던 20대 때는 나를 찾는 시간들이었다.
20대 초중반의 나는 낮은 자존감과 높은 불안감, 단단한 자존심의 벽들로 쌓여있었다. 한 번은 지나가며 인사하는 후배의 눈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부터 며칠 동안 내 평판에 대해 걱정했다. 그런 모습을 바깥에 보이는 건 스스로 허락되지 않았기에 티를 내지는 않았다. 실패에 대한 불안 때문에 내가 참여하는 모든 일들을 꽉 붙들고 구석에 쌓여있던 힘까지 끌어들여 움직였다. 공부나 동아리뿐 아니라 일도, 20대 때 해봐야 한다는 낭만도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했다. 주변에서는 열심히 산다며 얘기해 줬지만 기말고사 즈음 스트레스에 몸살까지 찾아와 아무리 입을 벌려보려 해도 아구가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를 꽉 깨물고 다녔다. 그리고 또 그 상태로 밤새 공부하고 시험을 치렀다.
문제는 사회에 나가서부터 시작됐다. 학교 다닐 때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라 말하며 한 길만 파는 사람이라고 동경도 좀 받았고 조금 부족했어도 기대 이상의 칭찬과 인정을 받고는 했다. 그 칭찬들이 몸이 부서질 것 같아도 기어서라도 앞으로 가게 만들었다. 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나보다 더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실수를 했을 때 듣던 타박이나 감정 섞인 질타를 무던하게 흘려보낼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능력이 나한텐 전혀 없었다. 번개를 맞은 피뢰침처럼 부정적인 말들은 내 안으로 다 흘러들어왔고 스스로를 '별 거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사람을 만나면 무시하는 것과 그 평가를 듣고도 버티고 기어서 계속 가는 것이었다. 무식하게 열심히 하는 것, 힘을 쓰고 체력을 소진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해도 실수는 하고 모든 것을 마음에 들 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 빠진 체력으로 듣는 질타는 견디기가 참 쉽지 않았다. 하루는 상사와 함께 출근하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지금 핸들을 꺾어버리면 오늘은 쉴 수 있지 않을까. 상사도 같이 다칠 테니까 오늘 모두가 쉴 텐데' 몸은 뇌에게 명령만 내리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뇌 한편에 남은 이성이 다행히도 모든 것을 지켜냈다.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 한 달만 쉬겠다고 선언했다.
그 선언으로부터 한 달이 되기 하루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 모든 것을 멈췄다. 어머니의 뒷정리를 하는 것 말고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내가 우울증과 공황이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사람과 대화하는 게 두려워 몇 마디 말을 하면 목이 쉬곤 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보컬 레슨을 등록했다. 처음 만난 날 새로운 것이 두려워 쭈뼛거렸지만 한 주 한 주 계속 소리를 내는 행동이 내가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글도 사진도 영상도 느리지만 계속했다. 내 말과 행동과 마음을 곱씹으면서 한 글자, 한 장면 찍어냈다. 그렇게 살아가니 다시 '할 수 있는 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말을 길게 할 수 있게 됐을 때 순례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해외를 나가본 적도 없었지만 당장 2주 뒤의 비행기를 예매해 버렸다. 그때의 순례길은 비수기여서 마주치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공립 알베르게를 가도 약 10명 남짓한 사람들뿐이었다. 덕분에 순례길을 걷는 대부분의 시간이 혼자였다. 여명이 트는 고요한 새벽에 내 발자국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가방 속 물건들이 부딪히는 소리, 생각들이 소리치는 소리들만 들렸다. 간혹 사진을 찍을 때 셔터가 여닫히는 소리와 함께 짧은 진동을 느끼기도 했다. 20년이 훌쩍 넘어가는 동안 내가 나를 생각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생각했다. 학교를 다닐 때도 일을 할 때도 내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 남이 나에게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냈다. 그 소리들이 곧 나를 규정했다.
그렇게 1년을 좀 넘게 살았을 때 주위에서 슬슬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해왔다. 착실히 모아 왔던 돈도 슬 바닥을 드러낼 때기는 했다. 그즈음 친구가 자신이 일 하는 곳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촬영 장비 렌탈샵이었는데, 장비를 관리하고 대여, 반납 때 확인만 잘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 일은 장비를 다루지만 근본적으로 서비스업이었다. 예약 연락에 답장하고 특이사항이 있으면 대처하고 손님들이 찾아오면 인사하고 안내하는 일이었다. 그간 쌓아온 서비스업 이력과 '넉살 좋다.'라는 옛 평판에 걸맞게 사람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사람이 무서워서 어떻게 말을 했는지, 무슨 표정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카운터에만 서면 세상이 뿌옇게 변했다. 그래도 실수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루하루 일을 하면서 사람 앞에서 긴장하는 경우가 점점 줄었다. 손님들의 얼굴이 간간이 보였고 자주 오는 손님들과는 안부를 주고받았다. 새로운 상황이 와도 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그 일을 시작으로 다시 세상에 나갈 수 있었다. 촬영을 종종 하면서 원래 하던 일로 복귀도 꾀했다. 그렇게 네 편의 작품을 더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작품이 끝났을 때가 30살 중반이었다. 한창 여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다음 작품을 들어갈 준비를 하려 했는데, 소식이 없더니 촬영이 아예 없어져 버렸다. 언젠가 내 바를 차리겠다는 결심을 마음속에 품고 살고 있었는데, 이때가 기회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 걸 차리기 전에 우선 그 산업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바에 취업을 했다.
내 20대는 이랬다. 대학과 영화와 우울과 공황과 어머니의 부재라는 키워드로 설명된다. 그 키워드를 거치며 비로소 나에 도달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떤 때 가슴이 뛰었나.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지금 괜찮은가. 이 질문들이 내 취향을 만들었고 내 스스로 회복을 위한 트램펄린을 만들었다. 나는 초록색과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독립하는 집은 산 중턱 어딘가. 그 안에 술과 악기와 카메라를 채워 넣고 힘들 때 내 취향 안에 파묻혀 지낸다. 그럼 또 하루, 이틀 더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20대의 경험들이 그 무게가 어땠고 과정이 얼마나 고됐든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시간들이 됐다.

■ 새로운 10년의 주제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 '사랑'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때 혐오과 분열, 양극의 이미지가 뚜렷했던 사회 속 두 집단 사이에 사랑을 외치는 얼굴들이 하나 둘 나타난 것이다. 작년 이묵돌 작가가 책 '초월'을 냈다. 무엇보다 사랑에 대해 충실한 책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세상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한 사람사람의 불가항력적 사건들에서 벗어나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그런 초월적인 사랑을 하고 싶었다.
나는 분명히 운명과 우연을 믿는 사람으로서 바텐더로 이직한 내 마음의 결정이 '사랑'이라는 말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 일을 하는 사람마다 각자의 목표와 이유가 있을 텐데 내가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사람들이 내일을 또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신병교육대에 갔던 절의 스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왔다.
소위 '땡중'같았던 그 스님은 노래를 부르면 부모님이나 여자친구, 친구에게 전화를 할 수 있도록 본인 핸드폰을 빌려줬다. 그러면서 불법은 전달하지 않고 새로 온 신병들을 놀리곤 했다. 자리에 앉아있던 훈련병들은 하루 종일 깔깔 거리며 웃었다. 그 시간의 끝에 스님께서는 항상 "다음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으셨습니까." 물으셨다. 물어봤기에 하는 그냥 대답이 아니라 너무 즐거웠기에 모두들 대답을 했다.
이 감정은 20대 내가 가장 힘들 때 들렀던 바에서 다시 느껴졌다. 혼자 밥 먹을 곳을 찾다 우연히 들어간 그 바에서 사장님과 일 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태어나 처음 가 본 바였는데 그곳이 아니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의 기운과 친절함에 오랜만에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덕분에 그다음 날의 하루를 더 살아갈 수 있었다.
이제 내가 그 힘을 전해주고 싶었다. 오는 손님이 반드시 나이스한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진상'을 부리는 손님. 좀 불편함을 만들어내는 손님이 와도 그 손님마저 지금의 행복에 낄 수 있게 해 준다면, 술이라는 접점과 사람과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다면, 결국 그 사람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이유들을 안아줄 수 있다면 내 앞에 앉은 모두가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의 10년의 인생 주제가 사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데에는 한 사건이 있다. 근래 한 사람에게 호감이 생겼었던 적이 있다. 20대 때였다면 마음 하나만을 근거로 밀어붙여봤을 수 있지만 이제는 '일단 지켜보자.' 상태가 됐다. 20대 연애들 때처럼 내 마음을 오해해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싶지도 않았고 그 결과로 오랜 기간 죄책감에 마음 아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이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되는가. 지금 보고 싶나. 그냥 성욕일까. 이 사람한테 바라는 게 있나. 내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이렇게 사랑 한 단어로 많은 질문들이 쏟아져내렸다. 길지 않은 사고의 결과로 '그냥 이 사람이 행복하길 바란다.'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에게 뭔가를 해달라거나 바라는 게 아니라,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밀접한 관계를 바라는 것은 그 행복함을 옆에서 지켜보며 연인이라는 증거로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외침과 '초월'의 만남, 사랑을 고민하는 시간들과 바텐더라는 직업이 겹치니 뚜렷해졌다. 20대의 주제는 나였고 30대의 주제는 사랑이구나. 그래서 행복했다. 나를 알고 사람과 세상을 사랑할 줄 알게 되는 사람이 되면 세상이 얼마나 행복해 보일까 싶다. 물론 이 관념들은 모두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30대에도 나는 변해가는 나를 확인하고 찾아갈 것이다. 끝에는 결국 내 존재와 주변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 내 단 한 번의 삶 중에서
나는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다.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단계씩 치밀하게 해 나가지를 못한다. 항상 뒷배 없이 눈앞에 행복을 좇아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다. 서퍼들이 파도를 타 듯, 산 위의 흙이 계곡물을 타고 강까지 흘러가 듯 그렇게 살고 있다. 덕분에 포기하는 순간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었다. 행복한 삶을 위해, 미래에 꿈꾸는 삶을 위해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또 어떤 것들을 쥐고 살아가고 있었다. 당장 출퇴근길 대중교통 안에서도 잠을 포기한 낯낯들에서 그런 동질감이 느껴졌다. 이게 작가가 말했던 치열한 삶이지 않은가 싶다.
나는 이 치열한 삶을 여러 방식으로 기록해 왔다. 계속해서 내가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남기려 한다. 내 치열한 증거 속에서 당신의 치열함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의 순례길에 하나의 비석이 될 마음으로, 한 걸음 더, 하루 더 살아가게 할 힘을 주려는 마음으로.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위해 건네는 나의 작은 사랑이다.
■ 한 줄 남기기
인생은 중간에 보게 된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p.20
생일을 하루인가 이틀인가 앞둔 날, 성당 지하 성가대 모임방에 모여 있는데 갑자기 불이 꺼지고 문이 열렸다. 불을 붙인 초가 꽂힌 작은 케이크를 들고 성가대원들이 들어왔다.
(중략)십팔 년 전,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난 것이 이렇게 환영받을 일일까. 내가 이런 것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초를 끄고 불이 켜지자 다시 모두의 환한 얼굴이 보였다. 하나하나 환대의 인격화였다. 누군가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그들이야말로 천사였고 동방박사들이었다.
(중략)구세주의 탄생은 그렇다고 쳐도 평범한 인간의 생일은 왜 축하하는 것일까? 그것은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환대의 의례일 것이다.
(중략)원치 않았지만 오게 된 곳, 막막하고 두려운 곳에 도착한 이들에게 보내는 환대야말로 값진 것이다.
p.30
나는 지인과 '야로'에 의존하는 엄마 방식보다 좀 어렵더라도 혼자 밀고 나가는 내 방식이 이제는 더 익숙하다.
p.38
어느 밤 아버지는 문이 닫힌 안방에서, 그래도 끝까지 버텨보라고 호소하는 엄마에게 '이제는 더 못 버틸 것 같다'고 거의 울듯이 토로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명예퇴직 동의서에 도장을 찍고 은행을 떠났다.
그 무렵 아버지가 양봉에 대해 꿈꾸듯 말하던 모습들이 기억난다.
"벌통을 철마다 적당한 자리로 옮겨놓고 나는 산속에 텐트 치고 꽃이나 보면서 쉬면 돼. 아무것도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 나는 그렇게 살다가 죽고 싶다."
p.40
내가 좋아하는 언어는 문학의 언어였다. 그 언어는 모호하다. 이것을 말하면서 동시에 저것을 말하고, 저것을 말하면서 이것을 말한다. 때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언어이며, 사람에 따라 무한히 다르게 해석된다.
p.48
그러나 나는 소설가가 되어버렸다.
p.48
나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자기들이 답을 몰라서 화가 났던 것 같다.
p.56
아버지가 사회에 나와서 배운 유일한 삶의 방식은 군율이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의 즐거운 목욕탕 나들이를 아버지 자신이 망쳤고, 그때 나와 동생이 빼앗긴 기쁨은 신발 한 켤레보다는 더 중한 것이었다.
p.60
모든 부모가 언젠가는 아이를 실망시키고, 그 실망은 도둑맞은 신발같은 사소한 사건 때문에도 비롯된다는 것. 그 누구도 그걸 피할 수 없고, 나처럼 어떤 아이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그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기억하고, 기억하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이해하면서도 아쉬워한다. 그렇지만 그게 부모를 증오하거나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누군가를 실망시킨다는 것은 마치 우주의 모든 물체가 중력에 이끌리는 것만큼이나 자명하며, 그걸 받아들인다고 세상이 끝나지도 않는다.
p.61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 기대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면 실망이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실망이 오른쪽으로 돌면 기대도 함께 돈다. 기대의 동작이 크면 실망의 동작도 커지고 기대의 스텝이 작으면 실망의 스텝도 작다. 큰 실망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기대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과연 그 춤이 보기에도 좋을까?
p.61
기대도, 실망도, 그냥 나 혼자 추는 춤이었다.
p.62
제사는 산 자들이 정색하며 공연하는 한 편의 연극이며 주제는 기억이다.
(중략)
잡초가 이름을 모르는 식물을 의미하듯 잡귀는 이름이 잊힌 귀신이다. 잡귀가 아닌 귀신은 그 이름을 불러줄 누군가가 있다.
p.63
신은 나에게 집중력을 주지는 않으셨지만 대신 태평한 마음을 주셨던 것 같다. 지금은 이래도 오 년, 십 년이 지나면 그럭저럭 잘할 수 있을 거야. 라는 마음. 나에게는 그 마음이 있었고, 참으로 다행하게도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를 때까지 참고 기다려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다.
p.71
세해에 세운 그 거창한 계획들을 완수하기에 열두 달은 너무 짧다. 그러나 십 년은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서 띄엄띄엄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p.72
인간은 평생에 걸쳐 테세우스의 배보다도 더 큰 변화를 겪는다.
(중략)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이 과거의 그 사람과 같은 존재라고 애써 믿으며 살아간다. 변하지 않은 어떤 것들을 애써 찾아내, 사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p.77
살아오면서 알던 이들의 변신을 많이 보아왔다. 그들의 변화를 접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그걸 설명할 수 있는 '도발적 사건'을 찾곤 했다. 누군가의 변절, 누군가의 타락, 누군가의 성공, 누군가의 추락, 누군가의 돌변을 말할 때 '걔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 로 설명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주의 만물이 그러하고, 내가 그러했듯, 그럴듯한 이유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변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p.79
작가의 일은 캐릭터를 만들어 대사와 행동을 부여한 뒤 출판을 통해 세상에 내보내면 끝이 난다. 그때부터는 독자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창작이 시작된다.
p.93
보는 것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널 당장 보고 싶어"라는 말은 사진을 보내달라는 뜻이 나이다. 보는 것은 같은 시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다. 만나서 의미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나는 그 일을 그렇게 보지 않아"라는 말은 '나는 그 일을 그렇게 이해하지 않아'라는 뜻이다. 보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를 대신해서 나를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p.98
어린 시정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p.102
작품 속 인물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의 사회에 속하고 싶어한다. 교양은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처럼 보인다.
p.132
다시 궤도를 이탈했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정식으로 등단도 했고 괜찮은 출판사에서 책이 나왔고 문학상도 받았다. 내가 한때 교양의 준거로 여겼던 나라들에서 내 책들이 출간되었다.
(중략)
결과적으로 누구도 내가 교양인인지를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중략)
너는 교양인의 흉내를 잘도 내고 있구나.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너는 아직 충분하지 않아. 너는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중략)
교양인의 관용과 너그러운 미소를 바라고 있다.
p.134
확실한 게 거의 없는데도 젊은이는 제한된 선택지 않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채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만 한다.
이렇게 내려진 결정들이 모여 확실성만 남아 있는, 더는 아무것도 바꿀 게 없는 미래가 된다. 청춘의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p.137
'언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느냐'
(중략)
그냥 PC통신 게시판에 글을 올리다가, 이럴 바에는 제대로 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 문예지도 읽고 신춘문예에 소설도 보내다가 덜컥 등단을 한 것이고, 이후로는 큰일났다 싶어 부지런히 썼을 뿐이었다.
p.139
그 학생들은 '하고 싶음'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의 마음.
p.141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중략)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p.143
로스터들은 원두가 가진 모든 면, 특히 최악의 면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p.172
그냥 흘러가게 두었을 때, 삶은 자연스럽게 악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악몽을 문장으로 옮겨 쓰기 시작하고 나서야 내 안의 어둠은 조금씩 질서가 있는 이야기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나는 핸들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어 비로소 주변의 세상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p.182
나는 가끔 '어쩌면 나에게 가능했을지도 모를 어떤 삶'을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후회는 아니다. 상실감에 가깝다.
p.184
내 눈앞의 세계는 단순한 현실이 아니라 내가 하마터면 살 수 있었을 n개의 인생 중 하나로 보인다. 지금 이 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과 스스로 결정한 것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칵테일이며 내가 바로 이 인생 칵테일의 제조자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삶을 잘 완성할 책임이 있다.
p.187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래에 나쁜 결과와 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p.188
많은 이달이 이 '단 한번의 삶'을 무시무시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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