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2026. 5. 18. 15:34생각에서 나오는 말들/with_think_rain


너와 가려했던 곳을 왔다. 카페들이 늘어서 있는 동네. 우리 집에서 산길을 가로지르면 나오는 동네다. 그 동네를 가기 위해 산길을 조금 올랐다. 흔들리는 나뭇잎들 사이로 뭉근한 햇빛이 넘나들었다. 반짝이 부서지는 게 물에 비친 윤슬과도 닮아있다. 조용한 곳과 산을 좋아하던 네가 분명 신나 했을 모습이 그려졌다.

그 동네에서 자주 가던 카페를 갔다. 그래봤자 어디에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다. 아무래도 오래 앉아있을 것 같아 개인 카페 같은 곳은 가지 못했다. 어쩌면 예쁘게 인테리어 된 그 카페들한테서도 네가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여기로 갈까?', '조금 더 내려가 볼까?' 같은 있지도 않았던 말이 인도 위에 나돌았다. 카페에서는 글을 썼다. 오는 길에 찍었던 몇 장의 사진을 손봤다. 혹시 네가 보러 오지 않을까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를 했다. 지난주부터 그리던 그림을 그렸다. 취미를 갖고 싶다 했던 나에게 네가 추천했던 일이었다. 예전에 했던 내 작업물을 보고 '개성 있다.'며 칭찬해 준 그림이었다. 그 칭찬이 남아 완성하겠다고 다짐했던 일이다. 거의 다 그려가 마무리를 했다. 네가 옆에 있었더라면 곧장 보여줬을 것이다. 너는 분명 '너무 잘했다.'며 또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해가 길어져 카페에서 나왔다. 얼추 다섯 시간 정도 한 자리에 있었다. 카페의 에어컨이 워낙 찼던 건지, 해 질 녘 좀 선선해진 덕인지 그다지 덥지는 않았다. 큰길을 따라 집으로 걸어갔다. 내리막을 걷는 길에 '저기로 한 번 가볼까?'라는 말이 들렸다. 물론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이 동네에 2년을 살며 한 번도 간 적 없는, 본 적 없는 길이었다. 이 순간에 우리였으면 분명 가봤을 길이다. 길은 좋았다. 한 편으로는 주택들이, 다른 한 편으로는 작은 천이 흐르는, 사람도 차도 없는 고즈넉한 길이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걷다, 천 건너편에 핀 꽃과 나무를 보다, 주택 담벼락 위 고양이를 보다, 서로를 보다, 사진을 찍다, 같이 있어 너무 좋다 했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조각이 비슷했으니까.

우리는 조각이 비슷했다. 좋아하는 것도, 삶을 보는 방식도, 겪었던 마음과 그 마음에 대한 지금의 마음도, 세세한 건 분명 달랐지만 어떤 틀에서는 비슷했다. 우리는 조각이 비슷했나? 분명했던 문장이 조각났다. 난 하늘을 좋아했고 넌 땅을 좋아했다. 난 노을과 구름과 빛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끝과 날아다니는 새를 보았다. 넌 꽃과 화분과 애벌레, 실뱀, 다소곳한 고양이를 보았다. 덕분에 나는 만개한 꽃의 예쁨과 화분을 파는 할머니의 섬세함과 실에 매달린 애벌레의 꼬물거림과 최선을 다 해 가는 실뱀의 열정과 동네 고양이들의 다양한 색을 볼 수 있었다.

세상은 왜 네게 그런 힘듦을 주어서 우리의 일을 더 분명하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결정을 한 것은 너였지만 결정을 하게 한 것은 네가 아니다. 그래서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 분명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