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4. 19:00ㆍwith_essay_rain/일주일의 산티아고 순례길!
2023년 03월 20일 스페인 시간 20시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이제 6시면 깬다. 하지만 잠에서 깼다고 몸이 다 깨는 것은 아니다. 어제 먹은 맥주 탓인지 피곤함이 남아 더 잤다. 다시 일어나니 7시였다. 간단히 씻고 준비해서 내려가보니 밖은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오늘은 약 30km 를 걷는 날이었고 마침 1층에 빵집을 함께 운영하기도 했기에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짐을 챙겨 내려와 토스트와 오렌지 주스를 주문해 먹었다. 오렌지 주스는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직접 갈아주는데, 전 날 한국인 순례자분께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천한 메뉴였다. 실제로 시지도 않고 달달한 데다가 알맹이까지 맛있게 씹히는 게 추천할만 했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있으니 순례자분이 1층으로 내려오셨다. 밥을 먹는 내 모습을 보며
"그래. 밥 꼭 먹고 출발해요." 하셨다. 며칠만에 듣는, 다분히 한국스러운 인사다. 왠지 모를 반가움이 느껴졌다. 밥을 다 먹고 길을 나서며 인사를 드렸다. 그 분께서는 하루 더 쉬고 출발하실 예정이라며 조심히 가라고 인사해주셨다. 그렇게 오늘의 순례길을 시작했다.
오늘도 날이 무척이나 좋았다. 앞선 이틀과는 다르게 늦게 출발해, 어둠에 대한 걱정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일찍 나온 덕분인지 길 초반에 많은 순례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서로를 지나칠 때마다 인사를 나눴다.
오늘은 좀 천천히 걸었다. 아침 밥을 먹은 덕분에 초반에는 힘 있게 출발했는데 어째서인지 갈 수록 힘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특별히 아픈데라고는 없었지만 어깨가 괜히 더 무거운 느낌이었다. 정신도 몽롱한 것이 아무래도 조심해야겠구나 싶었다. 거기에 전과는 다르게 오르막이 많이 있었다. 보통 오르막이 이렇게 많으면 내리막도 그만큼 나오기 마련인데 그저 오르막길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지형은 몸을 더 무겁게 만들기 좋았기 때문에 앞을 보지 않고 발끝만 바라보며 걸었다.
힘이 빠진 채 걸어가다 보니 언제인지도 모르게 '멜리데'에 도착했다. 월요일이여서 그런지 원래 그런건지는 몰라도 여태 가봤던 곳들 중에 가장 많은 차와 사람이 있었다. 도시의 초입은 조용했지만 중심부는 활발한 기운이 가득했다. 골목을 지나칠 때 가게 큰 창문 너머로 요리를 하던 분은 문어를 들어보이며 뽈뽀(스페인 문어 요리) 하나 먹고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엄청나게 큰 문어였지만 비용 걱정도 있었고 당장 뭘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괜찮다고 말하고 지나쳤다.
마을을 관통해서 지나가다보니 한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싶어 문을 열어봤는데 다행히 성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만난 성당들 중 유일하게 들어갈 수 있던 성당이었다. 나는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렸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줌에 감사드리고 앞으로 가는 길에도 감사할 수 있는, 친절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했다. 간단한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 나가려고 하니 문 쪽에 서 계시던 한 어르신께서 스페인어로 무어라 말씀하셨다. 나는 죄송하다며 영어와 한국어만 할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 나를 잠깐 보시더니 또 중얼중얼 말씀하셨다. 그러자 옆에서 기도를 하던 한 순례자분이 스페인어로 영어랑 한국어만 할 줄 안다고 할머니께 말씀해주셨다. (스페인어도 모르는데 그 사실은 어떻게 알았냐 하면 그 말 속에 '꼬레아나', '잉글레' 같은 말이 들렸다.) 순례자분은 내 말을 전해주시곤 자신의 일을 다 했다는 듯 자리를 떠나셨다. 그러자 어르신께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 잉글리쉬, 잉글리쉬, 잉글리쉬..." 하면서 혼자 중얼 거리셨다. 비록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말의 뉘앙스, 표정, 몸짓을 봤을 때는 오는 사람들이 다 영어밖에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듯 했다.
성당 밖으로 나왔다. 썩 좋지 않은 마음으로 나왔다. 방금까지 친절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가 바로 의미가 없어진 듯 했다. 이미 내 모습 그 자체로 친절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준비 없이 출발한 내 스스로에게 '용기를 냈다.' 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왔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의 내가 부끄럽고 심지어는 무례해보이기까지 했다. 안그래도 힘이 없던 몸에 그나마 남아 있던 힘들까지 다 빠진 채 그저 걸어야 하니까 걷는 사람처럼 다시 길로 돌아갔다.


한 30분 걸었을까, 도시의 중심부를 지나쳐 시골길로 변하는 그라데이션 어딘가를 지나치는 길에 또 다른 어르신을 만났다. 내가 가볍게 인사를 건냈는데 그 분께서도 스페인어로 무어라 말씀하셨다. 나는 아까 전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서 스페인어를 하지 못한다 말하고 그 자리를 얼른 벗어나려고 했다. 그 때 어르신께서 손가락으로 내가 가는 방향을 가르키며 "산티아고?" 하고 물으셨다. 그래서 "네, 산티아고로 가요!" 하고 대답했다. 나는 한 번 더 해보자 생각하며 용기를 내 번역기를 켰다. 그 번역기에 말씀하시면 자동으로 번역해 준다고 말한 후 보여드렸다. 핸드폰에 적힌 내용을 유심히 보시던 어르신께서는 내 핸드폰에 열심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한테 돌려주셨다. 아무래도 어르신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듯 번역기의 내용도 엉망이었지만 관련있는 몇 개의 단어들을 묶으니 운동 혹은 산책의 키워드가 떠올랐다. 그래서 "워킹?" 하고 말씀드리니 맞다고 하면서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 웃음에 힘을 얻어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고 물으시기에 사리아, 포르토마린, 팔라스 데 레이, 멜리데 거쳐서 아르수아, 산티아고로 간다고 말씀드렸다. 어르신께서는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소통을 계속 시도하셨다. 그 때 다른 어르신이 나타났다. 두 분께서는 함께 말씀을 나누셨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 부부이신 듯 했다. 나는 두 분께 먼저 가보겠다고 말씀드리며 공부해왔던 점심인사를 건냈다. 어르신께서는 웃으시면서 인사를 해주셨다.

문득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성당에서의 일과 길 위에서의 일. 비슷하지만 분명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감정의 결과를 얻은 것에는 내 자신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었다. 생각해보면 성당에서 어르신께서 하신 말씀이 정확히 무슨 얘기인지 전혀 알 방법은 없다. 그 말이 부정적이었다는 것도 모두 내 생각에서 만들어낸 일이었다. 하물며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사실이 나를 잘못된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행동하게 할 이유도 아니다. 지금까지 오는 길에 만났던 사람들. 마드리드의 바 직원, 파이브 가이즈 직원, 크레덴시알을 발급 받은 성당, 이탈리아 순례자, 심지어는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의 서약을 지키는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고 보이는 것 이상의 정보를 공유했다. 짧은 영어로 대화하고 필요할 땐 기술을 이용해서 소통을 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인문학적, 학문적 깊은 성찰은 아니더라도 소통의 즐거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에 즐거움을 경험했다.
그냥 함께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기에 산책로에서 만난 어르신과도 짧았지만 웃으면서 간단한 대화를 나눈 것을 보면 더욱 더 개의치 않아도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내 마음에게 스스로 상처 준 생각을 나은 방향으로 바꾼다고 해서 그 상처가 바로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는 생각이었다. 다친 마음이 회복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마음은 근육과도 같아서 상처를 받으면 더 커지기 마련이다.
나는 조금 더 힘차게 걸을 수 있었다. 끊임없는 오르막길을 올라 아르수아에 도착했다. 왜 오는 길에 내리막길이 그렇게 없었는지 깨달았다. 아르수아 마을 자체가 꽤나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을의 건물들 너머로 언덕의 초원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라면 오는 길에 오르막길 밖에 없는 것이 이해가 될 법하다.

이번에도 어플로 숙소를 찾아 괜찮아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직원분께서는 영어를 수준급으로 하셨다. 하지만 다른 한 명 - 본인 - 은 영어를 그렇게 까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약간의 잡음이 있었다. '벙베드' 라고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해 방을 안내 받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알고보니 '벙크베드'를 말씀하신 것이었다. 너무나도 정직한 한국식 발음에 익숙해진 탓이다.
오늘은 30 km를 걸었지만 생각보다 힘에 부치진 않았다. 지금까지 걸어온 것과 비슷한 정도의 힘듦이었다. 오늘도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성당에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지나 종이 울리기에 혹시나 싶어 문을 열어보니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오른쪽 구석자리에서 스페인 미사통상문을 검색해 켜놓고 최대한 미사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진행 방식은 비슷했다. 심지어 성당에 어르신들만 있는 것도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슷했다. 조금 다르게 느낀 점이라고 한다면 수녀님들이 각자 악기를 들고 대영광송 등 성가를 부르신다는 것이었다. 거이에 특별한 날이 아님에도 향로를 사용해 미사를 드린 다는 점도 달랐다. 순식간에 미사가 끝나고 길로 나오니 미사를 드렸던 어떤 어르신께서 말을 걸어왔다. '웨얼 아유 프롬?' 하시기에 "코리아! 꼬레아나!" 라고 했더니 북에서 왔냐고 물으셨다. 나는 웃으면서 남쪽에서 왔다고 말씀드렸다. 또 산티아고로 가냐고 물어보셔서 그렇다고 말씀드렸더니 거의 다왔다며 "부엔 까미노." 하고 인사해주셨다. 괜히 풍성해진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내일의 순례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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