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7. 19:00ㆍwith_essay_rain/일주일의 산티아고 순례길!
2023.03.19. 스페인 시간 20:50
한숨도 자지 못했다. 3월 스페인의 밤 날씨는 꽤나 추웠고 숙소 난방은 안 됐으며 난 이불도 침낭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밤 12시쯤에 몸이 추워 일어났다. 그냥 옷 입고 자면 괜찮겠지 하고 잠든 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그 상태로 몸을 쪼그려봤지만 옷을 뚫고 몸에 들어오는 찬 공기의 기운을 따뜻하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가지고 있던 외투 두 개를 꺼냈다. 외투라고 해봤자 얇은 바람막이었지만 하나는 다리를 덮고 하나는 상체의 앞으로 입었다. 적어도 안 입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 상태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모든 몸을 가능한 바짝 붙이니 따뜻한 기운이 더 올라왔다. 덕분에 두 시간에 한 번씩 깼다.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아마 10분에 한 번씩 깨거나 아예 잠을 못 잤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렇게 비몽사몽 거리다 보니 어느새 6시 알람이 울렸다. 여러 명이 쓰는 곳이라 진동으로 해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빨리 알람을 껐다. 주변에서도 하나 둘 알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미리 챙겨둔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간단하게 씻고 어제 오는 데 썼던 우비를 가방에 챙겨 밖으로 나왔다. 출발한 시간은 6시 반. 어제보다 30분 더 늦게 출발했다. 아무래도 산 길도 많고 험한 길도 중간중간 있는데, 너무 어두울 때 돌아다니는 게 위험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좋은 선택이었다.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자마자 멀리서 동이 텄기 때문이다.
해는 금방 올라와 하늘을 파랗게 만들고 세상의 밝기를 높였다. 오늘은 시작부터 산 길이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아니면 오후에 날이 좋으려고 해서 그런지 안개가 가득했다. 100m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오늘도 역시나 발걸음 소리, 숨소리, 옷들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머릿속 소리들만 들렸다. 주변이 안개로 가득한 산 중에 있다 보니 더욱 고독해진 느낌이었다. 고독하기보단 끝없는 공간에, 걷고 있는 나만이 있는 느낌이었다.
걸으면서 생각했던 건 그리 깊은 생각이 아니었다. 내가 보고 있는 안개가 안개인지 구름인지, 내 발걸음 소리가 어디서 좀 다른지, 내가 얼마나 바르게 걷고 있는지. 그런 기억도 잘 나지 않는, 흘러가는 생각들 뿐이었다. 이렇게 한쪽 뇌로 생각하고 한쪽 뇌로 흘러가는 짓을 하면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그러면서 걷고 있으면 어느새 많은 걸음을 걷게 된 후인 것이다. 나는 어느새 산의 위 쪽까지 올라와 있었다. 어느 지점부터 안개는 걷혀있었고 걸아왔던 길에만 안개가 남아있었다. 안개 위로는 아침 해가 열심히 올라오고 있었다. 역시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안개가 걷히고 울창한 나무들이 사라진 도로 주변으로는 비슷하지만 다른 넓은 초원이 오늘도 펼쳐져 있었다.
오늘의 첫 아침, 첫 시야를 사진으로 남겼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남기고 있으니 한 사람이 내 건너편을 지나갔다. 우리는 계속 같은 방향으로 걸어야 했기 때문에 괜히 사진을 더 찍는 척하며 거리가 멀어지길 기다렸다. 그 사람이 좀 멀찍이 떨어지고 나서야 다시 짐을 챙겨 나도 길 위로 돌아갔다.
길은 계속 곧은길이었다. 어제 왔던 길과는 다르게 굽이진 길이나 시야를 가리는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이 말은 즉, 내 앞에서 걷고 있는 사람과 속도가 같으면 그 모습을 계속 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우리 둘의 속도가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내가 추월해 가거나, 서로의 위치가 엎치락뒤치락하거나, 나란히 오래 걸어야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걱정과 안심을 하고 있다가 문득,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고민이 들었다. 사실 지나치면서 인사 한 번 하면 그만이고 말이야 통하면 하는 거고 안 통하면 그냥 걸으면 될 뿐인데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되면 인사는 건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략 30분 정도 더 걸었다. 거리는 조금 좁혀지긴 했지만 그렇게 많은 거리가 좁혀진 것은 아니었다. 상대는 꽤나 훈련된 걸음꾼인 듯했다. 그래도 그분도 사람인지라 중간에 가만히 서서 쉬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마다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더니 어느새 7~8 발자국 차이까지 좁혀졌다. 그때 덜컥 불안한 마음이 또 들었다. 아까 전에 했던 '인사를 건네어야지.'란 마음이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그 걱정의 이유를 알 겨를도 없었다. 단순히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원인을 알 수 없는 혹은 너무나 복잡한 원인들이 있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바로 뒤에서 불안해하면서 인사를 건넬지 말지에 대해서 걱정했다. 그렇다. 나는 지금 면접을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사업에 대한 중요한 얘기를 앞두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인사 하나를 건넬지 말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일 뿐이다.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중에 저 앞에 한 식당이 보였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는데 덩그러니 있는 곳이었다. 간판에는 카페라고 적혀있었다. 오늘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출발했다. 아침에 동네에 있는 자판기에서 뭐라도 뽑아 먹으려고 보니 지폐는 쓸 수 없는 자판기뿐이어서 그냥 출발해 버린 것이다. 전 날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지금 발견했을 때 챙겨 먹어야 했다.
그때 앞에 있던 순례자 분이 나를 돌아보셨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가게를 가리키고 뭔가 먹자는 시늉을 했다. 나는 사회성을 발휘해 좋다고 말하고 쫓아갔다.
가게 안은 자그마했다. 주문을 받는 곳과 작은 테이블 두 개가 있는 곳이었다. 테이블에는 네다섯 종류의 빵이 진열돼 있었고 과묵해 보이는 사장님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은 빵을 골라 주문했다. 나는 잠봉뵈르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현지에서 판매하는 잠봉뵈르는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일상에서 먹는 것이다 보니 더욱 단순한 조합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종류의 버터를 넣는다던지 샌드위치처럼 야채를 잔뜩 넣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에서 먹는 것은 대부분 바게트, 햄, 치즈만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빵을 사고 자리를 잡고 먹었다. 약간의 침묵 속에서 먼저 말을 꺼낸 것은 그분이었다.
"유 프롬?" 짧은 영어로 온 질문에 12년의 교육으로 배운 대답을 꺼냈다.
"아임 프럼 코리아. 웨얼 아유 프럼?"
순례자 분은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갑자기 핸드폰을 들더니 뭐라 말을 하고 내게 보여줬다. 구글 번역기였다. 알고 보니 영어나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분이셨다. 나도 번역기를 꺼내 들어 '저도 영어 잘 못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분은 핸드폰을 몇 번 조작하더니 내게 건넸다.
'출발할 때 만난 한국인 친구가 있어요.' 내가 '오!'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핸드폰을 가져간 후 다시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앞에 있는 이탈리아 순례자 분과 동양인 두 명이 보였다. 프랑스에서 함께 출발한 한국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700km를 넘게 걸은 기록도 보여주었다. 오늘은 '멜리데'까지 간다는 것을 보니 하루에 30~40km는 기본으로 걷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면서 할 수 있으면 나도 40km를 걷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분은 '누가 더 걸었다고 대단한 것이 아니에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라고 얘기했다.
순례길 위에서 누군가와 제대로 얘기한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용기를 좀 내기로 했다.
'순례길을 왜 오게 됐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분은 좀 고민하시더니 번역기로 대답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출발했어요. 이 길은 정말 마법 같은 곳이에요.' 어떤 힘듦이었을까 궁금했지만 구태여 묻지 않았다. 질문한 사람으로서, 대답을 들은 사람으로서 나도 내가 온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저도 힘든 시기에 출발했어요. 정말 놀라운 곳인 거 같아요. 치유되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분은 내 핸드폰을 보시더니 "굿 앤 굿 앤 굿, 굿, 굿." 하며 걷는 손짓과 함께 얘기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나아지고 치유받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문득 나는 아까 뒤에서 찍었던 사진이 생각나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분의 사진을 찾아 보여주면서 물었다.
'혹시 괜찮으면 이 사진 보내드려도 될까요? 이메일이나 사진 받으실 연락처 알려주시면 한국에 돌아가서 보내드릴게요!'
그분은 정말 고맙다면서 이메일을 남겨주셨다.
우리는 가게 밖으로 나왔다. 나는 한 번 더 용기를 내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그분은 흔쾌히 찍어주셨다. 그리고 본인 핸드폰도 꺼내 또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우리의 셀카를 각자의 핸드폰에 기록했다.
그분이 바로 갈 거냐고 묻기에 나는 조금만 더 쉬고 출발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분은 알겠다며 "부엔 까미노!" 하고 길로 돌아갔다. 나도 그에게 "부엔 까미노!" 하고 인사했다.
약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놀라운 경험을 한 듯했다. 내가 왜 그렇게 두려워하고 걱정했던가 싶을 정도였다. 그분의 뒤에서 걷는 동안 인사를 할지, 인사를 하면 싫어하진 않을지, 인사까진 했는데 대화하다 답답해하면 어쩔지. 많은 걱정과 불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분의 한 마디 말과 친절로 아침도 먹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 정말로 신기했다. 길 위에서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머릿속과 시선에만 집중을 했던 시간들이 순간의 제안으로 해결된 것이다. 그저 잠깐의 용기. 가벼운 마음. 그 정도였다. 어쩌면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는 친절함 혹은 좋은 마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분의 한 마디가 내게 겁먹지 말라는,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길로 나섰다. 어제와는 다르게 걷는 길에 많은 순례자들을 만났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상대가 먼저 인사를 해오기도 했다.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보는 표정과 마음에 많은 힘을 얻었다.
때로는 순례길 위 주민분들에게 그런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한 번은 작은 마을 중앙에서 길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는데, 뒤에서 뭐라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나를 보며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다시 길을 나섰다. 또 어떤 차들은 지나가면서 클락션을 울리며 인사를 해오기도 했다. 이런 작은 도움과 인사들은 나를 계속 걸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분들이 주셨던 도움과 응원은 타지에 홀로 서 있는 나에게, 먼 거리를 계속 걸어가는 나에게 '잘 가고 있다.', '잘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보여 힘들 때도 즐거운 마음이 솟아 더 힘차게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받은 마음은 고스란히 다른 순례자들에게로 돌아갔다. 원래 나였으면 인사 한 마디도 겁냈을 내가, 웃으면서 먼저 인사를 건네고 사람들에게 힘을 주게 된 것이다. 자주 접하는 말 중에 친절- 때로는 행동 - 은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내 친절이 누군가의 친절을 유발하고 결국엔 내가 다시 친절을 받게 된다는 얘기인데, 그 말을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접하고 실천하고 마음으로 경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건네준 친절이 누군가에게 건네는 친절이 되고 또다시 나는 친절을 받는, 그런 순간의 연속이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팔라스 데 레이에 도착하기 직전 한 레스토랑이 보였다. 뭐라도 마실까 생각하면서 레스토랑 앞을 지나치는데 익숙한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출발했던 이탈리아 순례자분이었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아는 체를 했다. 그분도 깜짝 놀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분은 가방을 내려놓고 그늘에서 잠깐 쉬고 있는 중이었다. 잘 가고 있냐고 얼마나 남았냐고 대화를 나눴다. 내가 "목이 마른데 이렇다 할 가게가 안 나오네요."라고 말하자 뒤에 있는 가게로 가보라고 했다. 음식은 별로지만 음료수는 맛있을 거라고 했다.
가게로 간 나는 콜라를 주문했다. 정말 음료수는 맛이 없을 수 없었다. 콜라가 나오자마자 먹어버리고 계산을 하려는데, 가게 위에 세계지폐들이 보였다. 당연스럽게도 나는 우리나라 지폐를 찾았고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한국인답게 아는 체를 했다. 직원분은 웃으면서 리액션만 보이셨다. 아마 여기에 오는 한국인들이 다 아는 체를 했겠거니란 생각이 들어 괜히 좀 민망해졌다.
목을 축이고 나오니 이탈리아 순례자분도 출발하려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함께 길을 출발했고 아까처럼 이탈리아 순례자분이 앞서 나갔다. 그래도 멀리 떨어지지 않고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라스 데 레이 초입에 도착했다. 그때 갑자기 순례자분이 뒤를 돌아 내가 걸어오는 모습을 찍었다. 스페인에서 와서 처음으로 내 모습이 찍혔고 순식간에 왓츠앱으로 내 사진을 받게 됐다. 신기하고도 웃긴 상황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 기대를 하기는 했다. 해외에 와서 누군가를 만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상상에서 수없이 무시받고, 멸시받고, 무너져 내렸기에 움츠러들어있었는데,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그 순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하고 괜스레 벅찬 감정이 들었다. 우리는 오래지 않아 팔라스 데 레이 중심에 도착했다.
나는 어플로 알베르게를 먼저 찾았다. 숙박 하루에 16유로였지만 모든 게 갖춰져 있는 숙소가 있었다. 사립 알베르게가 12유로에 수건 대여비를 따로 받는 걸 생각하면 그다지 비싼 가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전 날 숙소에서 씻을 때 고생했던 것과 새벽 내 추워서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수건이랑 이불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록 마을 중심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내일 가야 되는 길목에 있는 곳이었고 1층에 빵집과 함께 운영되는 곳이라 아침에 간단히 요기를 하고 가기에도 적합해 보였다.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 데스크에는 아무도 없었다. 빵집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얘기하니 직원이 직접 체크인을 도와줬다. 빠르게 체크인을 하고 빵집에서 잠봉브뢰 하나를 사 먹었다. 문 쪽에 있는 책상에 앉아 먹고 있는데 아까 그 이탈리아 순례자분이 가게로 들어섰다. 나는 "뭐야! 왜 여기 있어요!" 하면서 놀랐다. 알고 보니 나를 보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그저 먹을 것을 찾다가 다시 걸으려는 길에 빵집이 있어 들어온 것이었다.
그분은 본인이 먹을 것을 사들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몇 입 먹더니 번역기를 켜 내게 건넸다.
'이곳은 너무 관광지 같아요. 음식들 가격이 너무 비싸요. 이 빵도 맛있는 지도 모르겠고.'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이 숙소도 16유로예요.'라고 번역기에 적어 건넸다.
그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호텔, 호텔."이라고 얘기했다.
그와 나는 빵을 다 먹고 나왔다.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나누고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빨래를 했다. 내가 묵는 방 같은 층에는 코인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어 빨랫감들을 꺼내 돌려버렸다. 세탁기가 일하는 동안 아무도 없는 방에 돌아와 가방을 한 번 더 정리했다. 아무래도 가방 정리는 가능한 자주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러고 있으니 방에 어떤 순례자 한 분이 들어왔다. 이 알베르게에 온 사람 중 나까지 두 번째 순례자였다. 오늘 있었던 일, 그리고 이곳에서 묵는 나 이외의 첫 순례자를 보니 반가운 마음에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분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나는 놀라서 "한국 분이세요?" 하고 되물었다.
우리는 한참을 대화했다. 그분은 LA에서 오신 50대 남성분이었는데, 겉 보기로는 많아봐야 3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프랑스에서 출발했는데 본인 체력이 부쳐서 많이 걷지 못한다고 얘기해 주셨다. 그래서 오는 동안 짐도 동키에 맡기고 택시나 버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대화를 마치고 나는 간단히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저녁도 먹고 동네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도 마을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날씨도 좋고 편안한,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동네였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다 7시쯤 식당으로 향했다. 걷다가 쉬다가 하면서 지도를 통해 찾은 식당이었다. 한국인들의 평도 꽤 괜찮아 '오늘은 꼭 이곳에 가봐야지.' 생각했던 곳이었다. 식당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메뉴판을 주지 않아 바에 있는 직원한테 가 얘기했더니 그때 메뉴판을 주셨다. 메뉴는 다양했지만 혼자 온 처지라 소시지와 감자튀김이 있는 메뉴와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구석진 자리에 조용히 먹고 있으니 다른 테이블에도 사람이 앉기 시작했다.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은 사장님이 직접 두 명 이상이 있는 다른 테이블에는 뭔가 더 필요한 게 없냐고 묻거나 서비스를 주곤 했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어떤 손님에게는 '부엔 까미노'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나는 들어와서부터 계산을 마치고 나갈 때까지 어떠한 편의나 인사도 받지 못했다. 순례자 여권 도장을 물을 때도 손가락으로 카르키기만 했을 뿐이었다. 나는 내 자리에 팁을 남기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괜히 불편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뚜렷하게 화가 난다거나 '이건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그 불편은 전적으로 내가 느낀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가 그 가게에서 음식을 많이 팔아준 것도 아니었고 비싼 음식을 주문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한테 무례하게 대한 것도 아니고 추가적인 서비스, 그러니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저 다른 손님한테 하는 태도랑 나한테 하는 태도를 비교하면서 불편함을 느꼈을 뿐이었다. 내가 느낀 이 불편한 감정에 대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태도를 가져야 할까?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고민을 했다. 식당에서 나올 준비를 할 때나 숙소를 돌아가는 길에서나 결론은 매한가지였다. '내가 불편을 느낀 사람에게도 친절히 하는 것.'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친절뿐이었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나는 불편을 당했는데...' 같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물론 이번도 다르지는 않았다. 나는 불편을 느꼈고 굳이 친절을 베풀 필요도 없었다. 친절이라고 해봤자 약간의 팁과 먼저 건넨 인사였지만, 확실한 건 지금까지 배운 건 '그렇게 호구가 된다.' 였던 것이다. 나는 이 생각에 대해서 나에게 대답했다.
누군가 나를 호구처럼 생각해도, 우습게 생각해도, 나에게 무례하게 대해도 나는 그 사람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만 할 수 있다.
내가 베푼 친절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 그것이 내가 건네는 친절의 마침표였다. 상대에게 받은 것과 비교하며 계산하는 순간 이미 친절이 아니었다.
많은 생각을 하니 어느새 숙소 앞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로 바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있었다. 식당 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게 돼있어 식당으로 들어가니 낮에 만났던 한국인 순례자분이 맥주를 드시고 계셨다. 나는 식사하고 계시냐면서 붙임성 좋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프랑스에서부터 출발한 순례길에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있었던 일, 만났던 일, 느꼈던 일 등을 주고받고 순례길을 넘어서 우리의 살면서 있었던 얘기들도 주고받았다. 타지에서 동향인을 만나면 그렇게 즐겁다더니 이런 의미구나 싶었다. 우리가 나눈 얘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얘기가 있다면 어떤 노부부한테 들으셨던 'Your Camino.'에 대한 얘기였다.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파리에서 출발해야 한다.'와 같이 순례와 순례자에 대한 최소 기준을 만들어 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순례길은 어디서 시작하든, 중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상관없이 본인 스스로가 그 길 위에서 치유받고 의미를 찾는다면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라고 얘기해 주셨다. 그래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누군가의 말과 기준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만의 순례'를 '너만의 순례'를 하라는 의미였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순례길을 걸은 지 이제 이틀차 된 날 '내가 왜 걷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에 방향을 제시해 준 말이었다. 역시 말을 머리로 아는 것과 감정으로 아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다. 나는 그 순간부터 내가 만난 순례길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길 위에서 했던, 기억도 나지 않는 지나가는 생각들, 풍경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 순간들, 인사해 주시는 순례자 분들에게 힘을 받았던 순간들, 마을 주민분에게 도움을 받은 순간들, 특별한 인연을 만나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순간들, 한 가지 감정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된 순간들. 나는 이미 이 모든 것에서 치유를 받고 있었고 무엇인가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나의 순례길이었다.
우리는 대화를 마쳤다. 그분은 본인이 맥주를 사겠다며 얼른 계산대로 가셨다. 나는 "한 잔 먹었는데 제 건 제가 낼게요."라고 말했지만
"꼰대가 말하는 거 들어준 값이에요." 하며 너스레를 떠셨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하고 함께 숙소에 올라와 잘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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