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 : 일주일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 04. 포르토마린

2023. 5. 31. 18:00with_essay_rain/일주일의 산티아고 순례길!

2023.03.18. 스페인 시간 21시

순례 첫날. 아침 5시 반에 몸을 일으켰다. 엄청 깊게 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설친 느낌도 아니었다. 나쁘지 않은 컨디션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대충 준비하고 6시쯤 나왔다. 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건 켜져 있는 가로등뿐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길을 나섰다. 우비까지는 괜찮을 거 같았고 가방에 레인커버만 씌우고 출발했다.

숙소 앞. 비가 내리고 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보인 건 돌아다니고 있는 쓰레기차 뿐이었다. 동네는 밤새 내린 비로 눈부시게 젖어있었다. 바닥에 있는 화살표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성당 쪽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급할 게 없었기에 천천히 올라갔다. 들리는 것 빗소리와 옷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발자국 소리뿐이었다.

조금 올라가다 결국 우비를 꺼냈다. 계속 부슬부슬 내릴 것만 같던 비가 점점 거세졌기 때문이었다. 아마 입고 있던 바람막이만 입은 채로 계속 걸었더라면 카메라가방과 안에 있는 옷까지 다 젖어버렸을 것이다. 다이소에서 산 5000원짜리 판초우의는 꽤나 튼튼했다. 저렴한 투명우의처럼 찢어지지도 입기 불편하지도 않았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보니 동네가 내려다보였다. 여전히 동네는 고요했고 들리는 건 빗소리뿐이었다. 이제부터는 가로등이 없었다. 포장돼 있던 길도 갑자기 끊기고 숲길이 시작됐다. 마치 '여기까지가 이 마을의 경계선입니다.' 하고 알려주는 것처럼 길이 댕강 끊겨있었다.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계속 걸었다. 방금 전에 어둠 속에서 화살표를 한 번 놓쳤었기 때문에 이 길이 맞나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게다가 바로 옆에는 공동묘지가 있어서 불안함을 더 심어주었다. 결국 믿을 것은 곳곳에 나있는 화살표뿐이었다.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 계곡을 넘어가고 산을 올랐다. 길을 잃는 건 아닐지, 산짐승을 만나지는 않을지,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지 두려움이 엄습해 오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숨소리에 더 집중했다. 어느 순간부터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길을 안내해주는 노란색 화살표


핸드폰에 의지해서 가다가 고개를 드니 조금씩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제는 손전등 없이도 걸을 수 있을 만큼 하늘이 푸른빛을 띠었다. 주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넓은 초원, 작은 마을, 산등성이. 한눈에 담을 수 없는, 어떤 것으로도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한 번에 쏟아져내렸다. 약 1시간 반 가량을 혼자서, 어둠과 의심, 불안감 속에서 걷다가 만난 빛과 시야 속 존재들은 내게 처음으로 온 기쁨이었다. 생각해 보라. 의심으로 둘러 쌓인 시간들을 이겨내고 만난, 목적지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의 과정을 눈으로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지를. 첫 해외여행, 첫 유럽, 순례길. 이 조합은 걱정을 안 할래야 안할 수가 없는데, 그때 마주하는 '잘 가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큰 행복이다

산 중에 있던 비석(좌) 처음으로 만난 마을(우)


처음 길을 걸을 때부터 한 명의 순례자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어딘지 모를 길 중간에 드디어 만나게 됐다.
"부엔 까미노." 먼저 인사를 받았다.
"부엔 까미노." 똑같이 인사를 건네고 지나쳐갔다.
그뿐이었다. 그 순례자의 걸음과 인사, 행동에서는 여유로움이 드러났다. 순례자를 지나치기 200m 전부터 인사를 해야 할지, 그냥 지나쳐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면 별 거 아닌 일인데 그걸 그렇게 고민하고 혹시나 '당할지도' 모르는 무시 혹은 관심에 지레 겁먹고 있었다. 하지만 참으로 가볍고 그러면서도 반가운 스침이었다. 순례길은 그런 곳이었다. 누구도 재촉하지도, 강요하지도, 붙잡지도 않는, 오롯이 자신이 중심이 된 사람들이 걷는 곳이었다.

그 후로 용기를 더 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인사를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게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누군가는 반갑게, 누군가는 인자하게, 누군가는 어색하게 받아주었다. 어떤 형태든 모두가 인사를 받아주었다. 지나가야 할 큰길 위에 있는 사람들의 작은 인사와 친절은 나를 지치지 않게 해 주었다.

오전 9시 30분 무렵. 아직까지 밥을 먹지 못했다. 새벽에 출발해 문 연 곳도 없었겠지만 출발할 때부터 뭔가를 먹고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출발했다. 가다 보면 식당이 있을 테고 거기서 대충 한 끼 때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아무 식당도 만나지 못했다. 그나마 만난 두 개의 식당도 주말에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문이 닫혀 있었다. 어쩌면 더 이상 운영을 하지 않는 곳인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지나간 지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다행히도 자판기를 발견했다. 뜬금없는 곳에 자판기가 놓여있었다.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원이 통하고 있고 그 뜻은 이런 시골 산촌에 전기가 연결돼 있다는 뜻이니 계속 관리하시는 거 아닐까 싶었다. 나는 자판기에서 오레오와 초코 셰이크를 구매했다. 가격표가 따로 붙어있지도 않아 얼만지는 몰랐지만 일단 돈을 집어넣고 물건을 골랐다. '부족하면 얘기를 하든 돈을 뱉든 하겠지.' 고귀한 마음으로 비행기까지 타고 이국으로 날아오더라도 먹는 것은 역시 중요하다. 자판기가 뱉어낸 음식은 고스란히 뱃속으로 들어갔다. 역시 단 게 최고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30분쯤 더 걸어가다 마을을 하나 만났다. 그곳에는 순례자 쉼터로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안에는 벤치와 성물들이 놓여있는 공간, 그리고 자판기가 있었다. '자판기?' 여기 자판기는 음식, 음료 자판기, 따뜻한 음료를 먹을 수 있는 커피 자판기도 있었다. 심지어 종류도 더 많았고 가격도 상세히 적혀있었다. 문득 '조금만 더 참고 걸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흘러가버렸다. 이미 앞선 자판기에서 먹은 것도 간식으로써 만족스러웠고 이곳 자판기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앞선 선택에 후회하고 그 감정에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었다. 더 나은 선택지를 뒤늦게 발견했다고 해서 이미 선택한 것이 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날은 다 개어 있었다. 비와 어둠은 진작 걷히고 남아있던 구름들 마저 여기저기로 흩어졌는지 푸른 하늘과 태양이 드러났다. 길 끝 언덕 너머로는 한 마을이 보였다. '저 마을을 지나가게 된다면 저기서 밥을 먹으면 되겠다!' 생각했다. 그 와중에 그 마을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 언덕 쪽으로 향했다. 그 길은 포장도로 오른편으로 나있는 풀밭이었는데, 풀밭을 밟자마자 발이 푹하고 들어갔다. 그간 온 비 때문인지 완전 진흙밭이 돼 있던 것이다! 완전 갯벌이나 다름없었다. 더 이상 걸어갔다가는 어디까지 빠질지 몰라 얼른 길로 돌아 나왔다. 하지만 이미 신발은 다 젖어버렸고 신발 안까지 물이 들어올 것만 같았다. 우선 길 끝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어버렸다. 진흙이고 물이고 얼른 털어버릴 생각으로 바닥에 팍팍 쳤다. 그 덕분인지 이미 다 젖어서 감각이 없는 거였는지 금세 다시 걸을만할 정도로 말랐다. 신발을 다시 신고 가방을 메고 길로 돌아갔다.

보기엔 예뻐보이지만 진흙 밭인 곳 (좌) 양말 앞코까지 젖어버린 양말(우)


그 구간부터는 쭉 내리막이었다. 내리막 끝에는 갈림길이 있었다. 양 옆으로 나 있는 갈림길 중간에 이정표가 있었는데, 왼쪽으로 가도 되고 오른쪽으로 가도 된다고 나와있었다. 본래 이정표는 순례길을 한 방향으로 알려주도록 나 있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자세한 정보가 나와있는 표지판에는 길을 양쪽으로 나눌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이 돼있었다. 왼쪽은 본래 길이고 오른쪽은 대신할 길인데, 본래길이 워낙 좁고 경사가 가팔라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대신할 길을 만들어뒀으니 돌아가도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잠깐의 고민도 하지 않고 왼쪽으로 향했다. '대체 얼마나 위험하길래?' 하는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위험하다는 곳으로 가는 길 중


위험하다는 그 구간의 초입에 도착했을 때는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여태 걸어오는 길 중 좁은 길과 달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으로 코너를 돌자마자 '이래서 위험하다고 그랬군.' 했다. 이끼 투성이의 바닥과 벽, 새벽 내 내린 비, 발 디딜 틈이 거의 없는 계단에 급경사로 이루어진 길이었다. 오늘 걸어오면서 제일 긴장하며 발을 내디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손전등으로 길을 밝히며 왔을 때보다 조심히 걸었다. 다행히 보이는 이끼의 양만큼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마을까지 굴러갈 수도 있을 것 같은 길이었기에 가능한 조심히 내려갔다.

다행히도 미끄러지는 일은 없었다. 오늘 했던 집중 중에 최고로 집중해서 내려간 덕분일 것이다. 마지막 계단에서 내려와 지나온 길을 올려다봤을 때는 위에서 봤을 때보다 더 아찔한 경사가 있었다. 돌들이 깎인 흔적으로 보아 물이 흐르던 계곡 같았다. 이 시간까지 비가 오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비가 왔더라면 바로 워터 슬라이드 행이었을 것이다.

길 끝에는 도로가 있었다. 도로 건너에는 강가가 있었고 강 건너에는 아까 위에서 봤던 마을이 있었다.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은 지중해에 있을 법한 건물들로 가득 했다. 열심히 걸어 마을로 넘어가는 다리 앞에 도착했는데, 다리 옆에 '포르토마린'이라고 적혀있었다. 잠깐 밥이나 먹고 가자 생각했던 마을이 오늘의 목적지였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위험하다는 길 (좌) 밑에서 본 길(우)
위험한 길의 끝이 보인다 (좌)  가장 아래에서 본 길(우)


목적지가 눈앞에 있으니 더욱 힘차게 걸을 수 있게됐다. 순례길이든 운동을 하든, 뭔가 할 때 눈 앞에 목적지가 있으면 마지막 힘까지 낼 수 있다는 게 참 재밌다. 목적지가 보이기 전만 해도 '나는 여기까지야.' 하면서 포기할 때가 많은데 목적지가 보이기만 하면 어디서 그렇게 힘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멈추고 싶은 것도 조금 더 움직이게 되는 게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마을에 도착했다. 다리를 건너기 전 갑자기 여우비가 내렸는데, 마을에 발을 딛자마자 비는커녕 맑은 하늘과 따뜻한 햇빛이 내리쬈다. 마치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고 칭찬 좀 해주마. 이제 좀 쉬어라.'라고 얘기해 주는 것만 같았다.

다리 너머에 있는 포르토마린


마을 오르막길을 올라 공립 알베르게 앞 의자에 앉았다. 알베르게는 1시부터 문을 연다고 안내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게 12시 30분 정도였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 시간이었다. 걸어오느라 고생했던 다리를 쉬어주다 보니 이내 직원분이 알베르게로 오셨다. 나를 보고선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곤 들어가셨다가 조금 지나 문을 열어주셨다.

안으로 들어가 여권과 순례자 여권을 건네어드리고 안내를 받았다. 공립 알베르게의 평가를 보고 갔던 터러 걱정을 좀 했는데 굉장히 깔끔한 편이었다. 그리고 들었던 것처럼 한 방에 수십 개의 이 층침대가 있었다. 따로 짐을 보관할 곳은 없었지만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차피 오는 사람 모두 순례자일 것이고 그렇다면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만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큰 짐을 계속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안내를 해주신 직원분은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셨다. 우선 오전 내 비도 맞았고 양말도 그렇게나 젖어버려 얼른 씻고 싶었다. 갈아입을 옷과 받은 수건을 챙겨 샤워부스로 가 바로 씻었다. 내가 제일 처음 도착한 순례자이기도 했고 그 시간까지 온 사람도 없어서 편하게 씻을 수 있었다. 다 씻고 나와서 받은 수건을 뜯었는데, 수건이 아니었다. 안에 들어있던 것은 베개와 침대를 감쌀 1회용 피였다. 맞다. 이곳은 호텔도 아니고 가성비 좋은 게스트 하우스도 아니다. 이곳은 순례자들을 잠깐 쉬게 해 줄 '공립 알베르게'일뿐이었다. 공립 알베르게에서는 수건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수건을 챙겨 오지 않았다. 이미 샤워도 다 해버렸고 온몸에서는 - 내가 저지른 거지만 - 눈치 없이 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별 수 있을까. 햇빛에 말리면 그만이겠지 싶었다. 가지고 온 옷을 그냥 입고 입었던 옷은 자리에 대충 던져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밖은 여전히 해가 쏟아지고 있었다. 햇볕 아래서 드러누워 돗자리 위 고추처럼 건조 돼야겠다 싶었지만 가장 볕이 잘 들고 사람이 없는 곳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나는 - 정말로 - 괜찮았지만 이곳 주민들이나 다른 순례자들이 보기에 아시아인이 온몸이 젖은 채로 어딘가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상상 속의 그 눈빛을 이겨낼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귀찮음에 대충 던져놓은 옷가지처럼 늘어져 있다 보니 다시 허기짐이 찾아왔다. 이제 진짜 뭐 좀 먹어야 했다.

알베르게에서 쭉 내려오면 성당이 있고 그 바로 앞으로 식당이 늘어서 있는 골목이 있다. 이곳 식당은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테이블을 모두 야외에 꺼내놓고 있었다. 어제 먹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메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 이탈리안식 피자 간판을 내 건 가게가 있었다. 며칠 전부터 피자가 먹고 싶기도 했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를 받고 피자를 주문하니 직원분이 치즈볼도 먹어보라고 권유해서 같이 주문했다. 치즈볼은 자그마했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먹는 치즈볼이라기 보단 모차렐라 치즈가 안에 들어있는 튀김빵 같았다. 다 먹을 때 즈음 피자가 나왔다. '분명 맵다고 그랬는데...' 메뉴판에는 맵다고 표시돼 있었지만 하나도 맵지 않았다. 역시 맵다는 기준을 한국으로 잡으면 안 되는구나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면 매콤 축에도 끼지 못하는 정도였다.

피자를 다 먹고 마을 중앙에 있는 성당으로 갔다. 문이 닫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예 열려있지 않은 거였다. 마드리드에서 갔던 성당처럼 운영하는 줄 알았는데, 미사 때가 아니면 성당 문을 열어두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성당을 뒤로하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마을은 한적했고 하늘은 기분 좋게 푸르렀다. 마을이 워낙 위쪽에 위치해 있어 눈앞에 큰 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에는 간간히 길고양이들과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느 한 골목에 들어갔을 때 이제 오픈을 준비하는 바가 보였다. 테이블을 밖으로 꺼내두었길래 자연스럽게 앉았다. 내리막길 끝에 강과 산이 보이는,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이었다. 나는 가볍게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몇몇 사람들이 가게로 왔다. 모습을 보아하니 사장님과 친한 마을 주민분들 같았다. 사람들은 대화를 하고 웃고 장난쳤다. 그 모습이 한국에서 보던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뭐라고 말하는지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는데 아무튼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구나 싶었다.

포르토마린의 풍경


숙소로 돌아왔다. 바에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았다. 분위기는 너무나 좋았지만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는 사람들 틈사이에서 가만히 있으려니 되려 돋보이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외눈박이 세상 속 쌍눈박이가 된 느낌이었다. 사실 다들 별 관심도 주지 않았겠지만... 그리고 슬슬 해가 질 때라는 명분도 있었다. 숙소 1층에는 식당이 있는 로비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앉아 오늘까지 온 일을 쓰고 있다가 한 순례자분을 마주쳤다. 겉보기에는 미국 하이틴 드라마에 남자 주인공으로 나올법한 외모를 가지신 분은 나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나도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계속해서 글을 썼다.

의아한 점은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였다. 몇몇 다른 순례자분이 그 순례자에게 말을 걸었는데, 말 한마디 없이 표정과 행동으로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밥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순례자분이 그분 옆에 놓인 글을 읽더니 대단하다면서 엄지를 내보이는 것이었다. 분명 특별한 점이 있는 것이었다. 그 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도 책상에 놓여진 글을 읽어봤다.
'... 침묵의 서약을 지키기 위해...'
순례길이 끝날 때까지 침묵의 서약을 지키기 위해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밑에 설명에는 세상에 너무 많은 소음들 속에 자신의 소리를 전하기 위해 더 큰 소음을 만들어 내는 지금,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 혹은 듣는 법을 배우기 위해 침묵한다고 적혀있었다. 그래서 어느 누가 말을 걸어와도 가볍게 인사만 할 뿐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추운 데서 자서 말을 못 하는구나!" 하고 장난치자 가볍게 웃어 넘기기도 했다. 나였으면 사람들 없는데에서 소리 한 번 질렀을 거 같은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서 저렇게 평온한 표정과 여유 있는 행동을 어떻게 유지하나 싶었다.

같은 목적으로 한 곳에 모여있는 사람들도 각자가 다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구나 싶었다. 누군가는 순례길을 정복하고 싶어서, 누구는 영적인 깨달음을 위해서, 또 누구는 왜인지 모를 이유로 같은 길 위에 서 있었다. 이렇게 생각 없이 걸어도 괜찮을까 싶었다. 뭔가 깨달음을 얻는다던지, 좋은 친구를 만든다던지, 적어도 언어 실력이라도 늘려서 온다던지. 이도저도 아닌 데다가 목적도 없이 아무것도 얻어오지 못할 거라면 순례길을 뭐 하러 왔을까란 생각이었다. 그 돈 아껴서 맛있는 거나 먹던지 편하게 해외여행 가지 무엇을 위해 사서 고생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나 스스로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기 보단 그런 얘기를 하는 누군지 모를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올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난 이미 이곳에 있다는 것이었고 내일 또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사실이 목적 없는 두려움을 해소시켜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일을 준비하면서 두려워할 수는 있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억지 목적, '아무튼 뭘 얻었어!' 하는 마음을 경계하기 위해 온 힘을 다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